그러면 어떠한 일어남이나 일어나지 않음도 없을 때 당신은 그것들이 ‘나’와 함께 일어난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있음과 없음은 서로 관련되어 있으며, 마지막 경험과 마지막 지식 에서 그들 둘은 사라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학파들은 궁극의 실 재는 공空, 텅 빔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 공을 강조합니다. 그들은 공과 공의 개념에 집착하지만 이것은 또 하나의 생각일 뿐입니다. 공 이 일어나게 하십시오. 형상들이 일어나게 하십시오. 그것 모두는 마 음입니다. 공을 만들어 낸 것도 마음입니다. 공은 마음의 투사일 뿐입니다. 이 공의 투사는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우리는 공의 개념에 점점 얽매이 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마음은 그것이 투사한 것이면 무엇에나 집착합니다. 만약 공이 궁극의 상태라고 생각한다면, 마음은 당신을 위해 이 상태를 창조하고 당신이 그것을 즐기도록 할 것입니다. 마음은 당신이 이 공을 맛보게 하고 그것에 만족을 느끼게 할 것입니다. 이것은 미리 결정된 목적을 가진 계획입니다. 당신은 마 음으로 목표를 계획하고, 다음에는 그 동일한 마음이 그 상태에 들어 가서 그것을 맛봅니다. 형태들이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 놓아두십시오. 공이 일어나든 일 어나지 않든 놓아두십시오. 당신은 현상계의 나타남이나 사라짐 어느 것에도 관계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마음의 상태들이 쉬게 될 곳은 어 디입니까? 그것들이 가라앉는 곳은 어디입니까? 그것은 다른 어떤 곳 이며 다른 무엇입니다. 그것은 묘사되지 않고, 묘사할 수도 없고, 만 져지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손이 닿지 않는 곳, 손이 닿지 않는 영역에 있습니다. (혼자 조용히 웃음) 하지만 그것은 저의 어깨를 두드리며 “나 여기 있어.”라고 말하지 않겠 지요? 이 손이 닿지 않는 영역이 어느 날 저에게 와서 그 스스로를 알리 지 않겠지요? 그리고 그것이 적절한 시기에 찾아오지도 않겠지요? 당신은 그곳으로부터 어떤 메시지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손뼉을 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돌아갈 수 없는 곳이며 어떤 메시지도 나오지 않는 곳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 은 그 위에서 춤을 춥니다. 현상과 공은 모두 그 위에서 춤을 춥니다. 현상과 공은 무엇이 밑에 깔려 있는지 모르는 채 모두 그 위에서 춤을 춥니다. (새로운 질문자) 저는 앉아서 마음이 움직이는 법을 보고 있을 때, 저의 자아가 사방으로 채여 가는 것을 봅니다. 저는 앉아서 “나는 이것에 화가 난다.” 또는 “나는 이것을 좋아한다.” 또는 “나는 그것을 기억한 다.”는 생각을 봅니다. 또는 어떤 것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 도 하고 있는 저 자신을 보면서 아프거나 당혹함을 느낍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보고 있는 의식은 무엇입니까? 식별입니다. 식별이라고요? 식별하지 마십시오. 이런 것들이 오고 가도록 내버려두십시오. 당신이 번잡한 도로변에 서 있다고 상상하십시오. 차들은 양방향으 로 당신 곁을 지나가지만 당신은 그것들과 상관이 없기 때문에 그것들 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친구의 번호판이 달린 차가 옆을 지나가면, 그것에 주의를 줄 것입니다. 친구가 차를 타고 있는지를 알 기 위하여 차를 바라볼 것입니다. 많은 차들이 관심을 끌지 못하고 지 나갔지만 이 차는 주의를 끌 것입니다. 당신의 시선은 그 차를 따라서 움직이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것이 식별이 작동하는 방법입니 다. 지나가는 많은 차들에 무관심했지만, 관심을 끄는 차가 지나갈 때 는 식별을 사용하여 그 차에 시선을 두고 따라갔습니다. 이런 식으로 식별하는 것은 누구입니까? 한 생각만을 따르도록 하 는 것은 누구입니까? 이 물음을 던지십시오. 이 물음이 마음의 작용을 멈추게 할 것입니다. 그것은 한 생각만을 따르도록 하는 과정을 멈추 게 할 것입니다. 저의 마음에 어떤 뿌리박힌 패턴들이 있음을 봅니다. 저는 제가 프로 그램되어 있고 제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선 택권이 없음을 느낍니다. 당신은 언젠가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죄인으로 길들여져 왔기 때문에 죄인이다. 당신은 그것을 믿고 그런 식으로 산다. 그래서 당신은 평생 죄를 짓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저는 저 자신에게 어떤 작은 실험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 는 고요하게 앉아서 이 ‘나’라는 것이 자신에 대해 어떤 생각도 갖고 있 지 않을 때 무엇인지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매우 어렵다 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라는 것에 다른 어떤 것이 덧붙여지지 않으면 나에 대한 어떠한 지각이나 느낌도 없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이 생각을 없애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 로 당신에게 곤란함을 주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죄는 나에게 미치 지 않는다. 죄는 결코 내 안에 산 적이 없다. 나는 모든 죄로부터 자유 롭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진정한 정체입니다. 그것이 참된 당신입니 다. 그것은 당신의 장소이며 당신의 본성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존재 입니다. 나머지 모든 것은 당신에게 속해 있지 않습니다. 당신이 나중 에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은 외부의 매개체들로부터 모은 관념 의 다발들일 뿐입니다. 저는 당신이 죄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 는 당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압니다. 당신은 저 자신이고, 당신은 자유 롭습니다. 그것이 제가 말하는 것이고, 제가 당신에게 말하는 것입니 다. 당신은 당신이 죄인이라는 말을 듣고 그 말을 믿었을 뿐입니다. 그것이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어제 당신은 제가 죄인으로 길 들여져 왔고 물개처럼 길들여져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저 에게 이렇게 말할 때, 저는 그 말을 믿고 마치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당신이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은 저에 게 매우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만이 아닙니다. 모든 세상이 이처럼 영향을 받습니다. 그것은 모든 세대를 거쳐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이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것은 모두 상상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성냥 하나로 불태워 없앨 수 있 는 짚더미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지나치게 죄와 선에 대해 생각하도록 길들여져서 심지어 짚더미에 불을 놓는 것조차 죄가 될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선과 악, 옳고 그름에 대한 이 모든 생각들 때문에 당신은 성 냥을 긋지 못합니다. 당신의 방해물들은 성냥 하나로 밝혀진 불 속으 로 몽땅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 불이 자유입니다. 이 자유의 불로 모 든 것을 태우십시오. 극소수의 사람만이 이 길로 오며, 극소수의 사람만이 모든 것을 태 워 버릴 그 성냥불을 그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