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장의 1

19 마음은 자각을 찾지만, 자각하는 마음은 아무것도 찾지 않습니다 『나는 그것이다I am That』의 서문에서 니사르가닷따 마하라지는 그의 구 루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후 곧 구루는 세상을 떠났습 니다. 그가 정말로 그 가르침대로 살 수 있기까지는 3년이 더 걸렸다 고 그는 말합니다. 가르침이 성숙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성숙은 반드 시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즉시 올 수 있지만, 어떤 사 람들에게는 처음 진리를 들을 때 거기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아 내적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마음의 오래된 습관들은 잠시 동안 그들의 주 장을 거듭 내세울 수도 있습니다. 최종적인 해결, 즉 최종적인 동의가 일어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몇 번의 생애가 걸릴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그 지식을 받아들인 이후에도 몇 번 더 태어나야 할 지도 모릅니다. 일부 오래된 애착들은 한동안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전혀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은 가 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고, 더욱이 그 후에 자신의 전 생애 동안 그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게 완전히 준수하자면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야 당신은 그것에 머물 수 있습니 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오래된 습관들은 계속에서 당신을 뒤로 끌어 당길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완벽한 상태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남의 이야기를 듣고 거기에 대한 정보를 입수합니다. 그러나 이런 종 류의 정보는 간접적인 지식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지키고, 그것을 거 듭 숙고함으로써 그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얼마나 성공하느냐는 당신 에게 달려 있습니다. 당신은 우리 모두에게 생각이 없어야 한다고 말하며, 한 생각도 일으 키지 말라고 합니다. 저는 선종의 제3대조이신 승찬 대선사의 다음과 같은 훌륭한 게송이 생각납니다. “말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을 멈추어 라. 그러면 네가 알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말하지 말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참된 지식으 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저는 다양한 띠베뜨의 수행들에 대해 지금까지 책을 읽었습니다. 그 래서 데바와 신의 세계에 대한 많은 묘사들을 발견하였습니다. 우리 가 이러한 세계로 가서 그 세계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수행법들이 있 습니다. 이러한 띠베뜨의 위계 체계에는 다양한 수준의 신들과 영들이 있습니다. 저는 언젠가 스승님께 서로 다른 이 모든 세계들에 대해 말 씀을 드린 적이 있고, 스승님께서는 그것들이 정말로 존재하며, 원한 다면 그곳들을 방문할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것 들이 모두 마음의 투사이며 자유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씀하셨습 니다. 만약 당신이 생각을 한다면, 현상계의 모든 과정은 그곳에 있습니 다. 마음은 어떤 것도, 심지어 신들과 영들의 세계도 만들 수 있습니 다. 표면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많은 것들도 마음이 만들어 낼 수 있 습니다. 저는 언젠가 보드가야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어떤 스승께서 “마음을 비워라. 반드시 마음을 비워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 다. 그는 그 말을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그곳에는 자기 마음을 비웠다 고 계속 말하던 괴상한 스님이 한 명 있었습니다. 저는 이 스승에게 그 스님의 말이 정말 진짜인지를 물어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스님은 매 우 이상하고 불합리하게 행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마음이 텅 빈 채로 태어났다. 이 말은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어리석다는 뜻이다. 마음속에 있는 것을 내버리고 마음을 텅 비우는 식별이 있을 때, 이것이 지혜이고 깨달음 이다. 이것이 그 차이다. 너는 반드시 마음속에 있는 것을 버리려는 식 별력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마음이 태어날 때부터 비어 있다면, 어떻게 그것을 마음이라고 부 를 수 있겠습니까? 마음은 그 안에 오직 생각이 있을 때만 마음입니다. 무념no thought은 또 다른 것입니다. 무념에는 텅 빈 마음이라는 생각조차 없습니다. 여전히 생각이 마음속에 존재하는 한, ‘텅 빈 마음’이라는 말 은 또 하나의 생각, 또 하나의 개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당신에게 명상하는 동안 고양이를 생각하지 말고 명상 을 하라고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당신은 고양이를 생각 하면서 자연스럽게 앉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당신의 마음에 이런 암시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마음의 모든 생각을 비워 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명상하는 동안 속으로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이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것 역시 당신의 생각들 가운데 하나가 될 것 이고, 당신의 개념들 가운데 하나가 될 것입니다. 마음의 상태에 대해 서는, 특히 당신이 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의 상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편이 더 낫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상태에 대한 생각들은 결국 마음속에 생각들만 추가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마음을 건드리거나, 마음에 대한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할 경우 그 생각들이 당신 을 물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이용할 필요가 있을 때, 마음을 이용하십 시오. 불필요하게 마음을 들고 돌아다니지 마십시오. 필요 없을 때는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지 마십시오. 마음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그냥 내버려두세요. (새 질문자) 오늘 아침 저는 아무것도 자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매우 강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 마음속의 무언가가 ‘나’는 자각을 가지고 있다거나 혹은 ‘나’는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자각을 가졌다는 이러한 생각에 집착되어 있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그러나 이 생각을 들여다보 면서,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의 팔은 자각을 가 지지 않고, 다리도 자각을 가지지 않고, 신경, 근육도 자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뇌나 뇌의 생각들조차 자각을 가지지 않습니 다. 저는 어떤 것도 자각을 ‘가질’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자 각은 그냥 존재할 뿐입니다. 마음은 자각을 찾지만, 자각하는 마음은 어떤 것도 찾지 않습니다. 이 가르침은 여전히 설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것이 제 생각 입니다. 그것은 만질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으며, 아무도 손대지 않 고, 아무도 도달하지 못했으며, 아무도 그것에 대해 가르치지 못했습 니다. 지금까지 누구도 이 가르침에 가볍게라도 닿지 않고 있습니다. 이 것이 제 결론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여기저기서 조약돌을 하나 집어 들 고 산꼭대기로 가서 “나는 다이아몬드를 찾았다.”라고 외칠 수 있습니 다. 그러나 참된 가르침은 여전히 표현될 수 없고 설명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다이아몬드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들이 실제로는 조 약돌을 설명하는 말이란 뜻입니까? 무슨 의미입니까? 다이아몬드를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바르게 설명할 어휘가 없다는 말 입니다. 오직 조약돌을 설명할 말만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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