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나를 사랑하라 아르주나 1. 세상에 나타난 인간 모습의 신(사구나)으로서의 당신을 늘 숭배하는(갸나 요가보다 더 쉽다. 박띠 요가에서는 신과 가까운 관계를 만든다. 성향이나 능력에 따라 천천히 다섯 바바 즉 태도 중 어느 하나를 발전시킨다. 그 첫 번째는 샨따 바바 즉 평화로운 숭배의 태도, 두 번째는 다스야 바바 즉 주인을 향한 하인의 태도, 사끼야 바바 즉 친구의 태도, 바따살야 즉 부모와 아이의 태도, 마두리야 바바 즉 연인의 태도이다. 이 중 마지막의 것이 헌신의 절정이다. 그것은 신속으로의 몰입이다) 확고한 박따(헌신자)와 형상이 없으며 나타남이 없는(아비약땀, 감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모든 제한 즉 언어와 마음을 초월하는) 분(니르구나)으로서 당신을 숭배하는 사람, 이 중 누가 요가에 더 잘 자리를 잡습니까? 크리슈나 2. 이런저런 모습으로 나타난 나에게 마음을 고정시키고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헌신과 믿음으로 나는 숭배하는 사람들이 요가에 더 많이 자리를 잡는다. 3. 그러나 불멸이며, 정의할 수 없으며(마음과 언어가 미치는 범위 너머에), 나타나지 않으며(지식의 기관에 의해 이해가 가능하지 않은), 모든 곳에 있으며(공간처럼), 생각할 수 없으며(신에 대한 구도자의 모든 생각은 고요한 명상으로 나아가게 한다), 변화하지 않으며(꾸따스따, 금속의 형태를 변형시키기 위하여 두드리는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모루, 그 위에 놓인 것의 형상은 변화하지만 모루는 그대로. 삼사라는 변하지만 브람만은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아짤람), 영원한 브람만을 숭배하는 사람 4. (그러한 숭배를 통하여) 그는 그의 감각이 고요하며, 모든 환경 아래에서 마음이 평온하며, 자연적으로 다른 모든 존재의 안녕을 위해 일한다. 그러한 헌신자 역시 나에게 바로 온다(나에게 이른다). 5. 그러나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서의 나를 찾으려는 사람은 더욱 어려운 방법을 선택했다. 왜냐면 그것은 몸을 가진 존재가 그 목표에 이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그것은 미묘한 지성을 가진 현자에 의해서만 보인다). 6. 나에게 가장 가까운 헌신자는 행위의 결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그 대신에 그것 모두를 나에게 바치는, 다른 모든 것에 앞서 나를 갈망하고, 요가 수행을 통하여 일점지향의 마음으로 나를 명상하는 사람이다. 7. 아르주나여, 그렇게 해서 나에게 마음이 고정된 그러한 헌신자는 나를 죽음과 환생의 바다인 세상으로부터 그의 구원자가 곧 됨을 경험한다(니르구나 브람만을 깨달은 사람은 영원한 희열 혹은 참나 깨달음 혹은 까이발야에 이른다. 사구나 브람만을 깨달은 사람은 브람마 로까로 가서 신의 모든 부와 힘을 즐긴다. 그러고 나서 그는 히란야가르바로부터 절대자의 신비로 입문되며 어떤 노력이 없이 듣기, 반추나 명상이 없이 신의 은총으로 니르구나 브람만을 깨달은 이들이 얻은 같은 상태를 신의 은총을 통하여 얻는다). 8. 그러므로 그냥 나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계속하라. 그대의 마음을 나에게 고정하라. 그대의 지성을 나(내가 누구인지)에게 머물게 하라. 그러면 그대는 곧 우리가 영원히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9. 만약 그대가 그대의 마음을 나에게 계속 고정할 수 없다면, 그때는 (그대가 좋아하는) 집중을 수련함으로 나에게 도달하기(얻기)를 바라라. 오, 다난자야여! 10. 만약 그대가 이 수련조차도 할 수 없다면, 그때는 (수련이 없이) 자신의 모든 행위를 양심적으로 나에게 바치는 데 열중하라(까르마 요가. 도구로서, 이기적인 동기가 없이 거저 나에게 봉사하고 나의 기쁨을 위하여). 나를 위하여 행위를 하는 것만으로도 그대는 완성에 이를 것이다(처음에는 마음의 정화를 얻고, 그다음에 집중과 명상을, 그다음에 지식을, 그다음에 궁극의 완성을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