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오, 빠란따빠여! 브람만(학자 혹은 사제), 끄샤뜨리야(리더 혹은 전사), 바이샤(상인) 및 수드라(노동자)의 의무는 그 자신의 타고난 자연의 성품(구나)에 뿌리를 두고 있다. 42. 고요(사마, 과거 기억인 마음의 통제), 감각의 통제(다마), 고행(따빠스, 즐거움을 통제함으로 몸을 훈련하기), 순수(사우짜), 용서(끄샨띠. 타인에 의하여 해를 당했지만, 마음의 침착함을 지키는 것), 정직(강직, 단순, 아르자바, 자기 자신의 마음에 일치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올바르게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 지식(갸나, 높거나 낮은 진리들의 진정한 내용에 대한 지식), 깨달음(비갸나, 지혜, 지고한 실재에 대한 직접적인 깨달음), 아스띠까(신에 대한 믿음, 긍정적인 믿음)은 그 자신의 자연(구나)에서 나온 브람민의 의무이다. 43. 용맹, 자신감(대담함), 확고함(불굴), 민첩함(기민함), 전투에서 물러나지 않음, 관대함과 명령하는 능력은 그들 자신의 자연의 부분인 끄샤뜨리야(보호자)의 의무이다. 44. 농업, 목축, 무역은 그 자신의 자연에서 나온 바이샤의 의무이다. 그에게 자연스러운 수드라의 의무는 봉사이다. 45. 사람은 그 자신의 의무를 행함으로 완성에 이를 수 있다. 의무에 헌신하는 사람이 어떻게 완성을 이루는지에 대한 나의 말을 들어보라. 46. 자기 자신의 의무를 행하면서 (결과를 바라지 않고) 모든 존재가 기원하는(나타나는) 그리고 이 온 우주에 퍼져 있는 그분을 숭배함으로 완성에 이른다. 47. 아무리 잘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의무보다는 아무리 잘 하지 못하더라도 자기 자신의 의무를 하는 것이 더 낫다. 자신의 자연이 지시하는 의무를 하는 사람은 아무런 죄를 짓지 않는다. 48. 오, 꾼띠의 아들이여! (보기에) 결함이 있더라도 자신의 타고난 의무(바사나를 지니고 태어나기에)를 버리지 않아야 한다. 불이 연기에 덥혀 있듯이(나무를 태우면 연기와 불이 동시에 있기 마련이다). 모든 행위, 모든 활동은 결점으로 덮여 있기 때문이다(자아를 지니지 않으면 새로운 바사나를 축적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바사나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49. (산야사가 무엇인지 설명한다. 처음에 아르주나의 산야사에 대한 이해는 무행위였다. 그는 산야사로 죄를 일으키지 않으므로, 목샤를 얻을 것이다. 그러나 행위가 없는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는 첫째 자아가 없이 자신의 의무를 다하여 현재 존재하고 있는 바사나를 지워야 한다. 쉽게 말하면 자아 없이 자신의 의무를 하는 것이다. 아르주나는 전사이기에 싸워서 자신의 바사나를 태워야 하고 두 번째로 지금 행하고 있는 행위의 결과를 얻으려 노력하지 않으면 미래의 바사나가 축적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지성이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으며(마음의 통제자가 지성, 지성은 참나가 반사하는 매체, 그것은 진리에 대한 무지 즉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무지로 흐려져 있다. 불순으로 오염된다. 행위의 결과를 즐기려는 나가 있는 자리가 지성, 나는 그것을 좋아한다. 나는 그것을 좋아할 것이다. 등. 나, 자아는 행위나 행위의 결과에 집착함으로 더 커진다), 자신의 마음과 감각이 정복되었으며, 탐욕이 없는 사람은 포기로 (아무런) 행위가 없는 지고한 상태에 이른다(산야사는 행위의 포기가 아니라 탐욕의 포기이다). 50. 그러한 행위의 완성(까르마의 굴레로부터의 자유)에 이른 사람이 어떻게 지식의 최고의 상태인 브람만에 도달하는지를 이제 간략히 그대에게 말할 것이다. 오, 꾼띠의 아들이여!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의 지성에 무지의 마지막 얇은 베일을 제거한다. 지반묵따의 상태를 다시 발견하도록 아르주나를 도와주려고 크리슈나는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