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빠데사 운디야르Upadesa Undiyar(가르침의 정수) 우뽀드가땀 (서문 시) 1. 다루 바낫띨 따밤쩨이 디룬다발 뿌루바 깐맛딸 운디 빠라 뽁까라이 뽀이날 운디 빠라 과거 까르마(행위)의 영향으로 다루까 숲에서 금욕을 수행하는 리쉬들은 (특별한 능력을 구하며) 타락했습니다. 2. 깐맛따이 엔드루 까다불일라이 예눔 바맛따 라이날 운디 빠라 반자 세룩끼날 운디 빠라 까르마 외에는 신이 없다는 확신에 사로잡혀 리쉬들의 자아는 가득 찼고, 그들은 신으로부터 돌아섰습니다. 3. 깐마 빨란다룽 깔딸 빠릿뚜 쩨이 깐마 빨랑깐달 운디 빠라 갈밤 아간드라날 운디 빠라 까르마의 열매를 내려주시는 신을 무시하는 대가를 치르고 리쉬들의 자만심pride은 그들을 떠났습니다. 4. 깟따룰 옌드루 까라이야 까루나익깐 셀따룰 세이다난 운디 빠라 쉬반우바 데샤미 둔디 빠라 리쉬들은 지혜를 깨닫고는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고 신에게 기도했습니다. 쉬바 신은 은총의 눈길을 보내주었고 다음의 시들은 리쉬들에게 주는 그의 가르침들입니다. 5. 웃곤 도루가 우빠데샤 사랏따이 웃꼰드 데룬수감 운디 빠라 웃뚠 뽀린디둠 운디 빠라 축복은 이 ‘우빠데샤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고 수련하는 이들 안에서 생겨날 것입니다. 6. 사라 우빠데샤 사라뭇 사라베 셰라 깔리셰라 운디 빠라 띠라 뚜얄띠라 운디 빠라 이 ‘우빠데샤 사람’을 충실히 지키십시오. 그 결과는 비길 데 없는 행복이며 모든 슬픔은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눌 Nul (본문)] 1. 깐맘 빠얀 다랄 깟따나 다나이 얄 깐만 까다 불로 운디 빠라 깐만 까다 불로 운디 빠라 깐만 자다 마달 운디 빠라 신이 그것을 명하기에, 행위는 결과를 낳습니다. 어떻게 행위가 신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지각insentient이 없습니다. 2. 비나이인 빌라이부 빌리 붓뜨루 빗따이 비나익 까달 빌 띠둠 운디 빠라 비나익 까달 빌 띠둠 운디 빠라 비두 따라 릴라이 운디 빠라 행위의 결과는 사라집니다. 하지만 행위는 목샤로가 아니라 끝없는 행위의 바다로 이끄는 또 다른 행위의 씨앗을 남깁니다. 3. 까룻 따눅 깍꾸 닉 까미야 깐만 까룻따이 띠룻 띠얗 둔디 빠라 까룻따이 띠룻 띠얗 둔디 빠라 가띠 바리 깐빅 꿈 운디 빠라 신에게 바친 사심이 없는 행위는 마음을 정화시키고 목샤로 가는 길을 알려줍니다. 4. 디담 이두 뿌자이 제바 문 디야 남 우달 바 꿀랏 또릴 운디 빠라 우달 바 꿀랏 또릴 운디 빠라 우얄 바굼 온드리 론드룬디 빠라 이것은 분명합니다. 몸, 말, 마음의 작용인 숭배, 찬양, 명상은 순차적인 상승을 위한 계단들입니다. 5. 옌누루 야붐 이라이 유루 바메나 옌니 바리 빠달 운디 빠라 옌니 바리 빠달 운디 빠라 이샤날 뿌샤 나이 운디 빠라 8가지 모습들(에테르, 불, 공기, 물, 흙, 태양, 달, 살아있는 존재들)을 신의 모습으로서 숭배하는 것은 신에 대한 완전한 숭배입니다. 6. 바룻 딸릴 박 꾸짜 바익 꿋 제빳 띨 비룹빠마 마나담 운디 빠라 비룹빠마 마나담 운디 빠라 빌람 분 디야 나미 둔디 빠라 찬양의 찬가를 부르는 것보다 (신의) 이름을 반복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크게 소리 내어 (이름을 반복하는) 것보다 조용히 그렇게 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 중의 으뜸은 마음속으로의 반복 즉 디야나(명상)입니다. 7. 빗뚜 까루달린 아루 네이 빌 찌볼 빗띠다 둔 날레 운디 빠라 빗띠다 둔 날레 운디 빠라 비셰다맘 운나베 운디 빠라 간헐적 명상보다는 끊임없이 흐르는 냇물의 흐름이나 아래로 흐르는 기름의 이동처럼 꾸준하고 지속적인 흐름의 (명상이) 더 낫습니다. 8. 아니야 바밧띤 아바 나가 마굼 아나 니야 바바메 운디 빠라 아나 니야 바바메 운디 빠라 아나잇 띠눔 웃따 맘 운디 빠라 그분을 (자신)이 아닌 다른 이로 보는 것보다 그분을 안에 있는 ‘나’로 생각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9. 바바 발랏 띠날 바바나 띠다 삿 바바 띠룻 딸레 운디 빠라 삿바바 띠룻 딸레 운디 빠라 빠라 박띠 땃뚜밤 운디 빠라 순수한 존재 안에 살고 강렬한 사랑으로 생각을 초월하는 것, 이것만이 지고한 헌신입니다. 10. 우딧따 이닷띨 오둥기 이룻딸 아두 간 맘 박띠 윰 운디 빠라 아두 간 맘 박띠 윰 운디 빠라 아두요가 야나 뭄 운디 빠라 우리가 비롯된 곳인 존재의 가슴에 흡수되는 것absorption이 까르마(행위), 박띠(헌신), 요가(합일), 그리고 갸나(지식)의 길이 가르치는 것입니다. 11. 발리 율 라닥까 발라이 바두 뿟 볼 우라 뭄 오둥 구룸 운디 빠라 우라 뭄 오둥 구룸 운디 빠라 오둑까 우빠야미 둔디 빠라 호흡을 정지하면holding 그물에 걸린 새처럼 마음이 통제됩니다. 호흡의 통제는 가슴으로의 흡수absorption를 도와줍니다. 12. 울라 뭄 우이 룸 우날 분 세얄 룸 울라 반 낄라이 이란 둔디 빠라 울라 반 낄라이 이란 둔디 빠라 온드라밧뜨린 물람 운디 빠라 (생각과 행위) 즉 마음과 호흡은 자라서 나온 두 가지입니다. 둘은 한 뿌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13. 일라 야무 나샴 이란 담 오둑 깜 일라이 뚤라 데룸 운디 빠라 일라이 뚤라 데룸 운디 빠라 예라 두루 마인다 델 운디 빠라 흡수에는 잠김과 파괴라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잠긴 마음은 다시 살아납니다. 죽은 마음은 다시는 되살아나지 않습니다. 14. 오둑까 발리야이 오둥 굼 울랏따이 비둑 까베 올 바리 운디 빠라 비둑 까베 올 바리 운디 빠라 비윰 아다 누루 운디 빠라 호흡을 통제하고 생각을 억제하면, 마음은 안으로 향하고는, 서서히 사라져 없어집니다. 15. 마나 부루 마야 메이 만누 마 요기 따낙 꼴 셰얄 일라이 운디 빠라 따낙 꼴 셰얄 일라이 운디 빠라 딴니얄 산다 난 운디 빠라 마음이 사라지면, 전지전능한 보는 자는 자신의 본래 존재로 돌아갑니다. 그것은 이루어야 할 행위가 없습니다. 16. 벨리 비다 양갈라이 빗뚜 마난 단 올리 유루 올달레 운디 빠라 올리 유루 올달레 운디 빠라 운마이 우날 찌얌 운디 빠라 마음이 외부 대상들로부터 돌아서서 그 자신의 눈부신 모습을 보는 것이 진정한 지혜입니다. 17. 마낫띤 우루바이 마라 바두 샤바 마나 메나 온드릴라이 운디 빠라 마나 메나 온드릴라이 운디 빠라 말감 네랄 꾸미 둔디 빠라 마음이 끊임없이 그 자신의 모습을 탐구하다 보면, 마음과 같은 그러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모두에게 열려 있는 직접적인 길입니다. 20. 옌낭 갈레 마남 야비눔 난 에눔 옌나메 물라 맘 운디 빠라 옌나메 물라 맘 운디 빠라 야나 마나 메날 운디 빠라 생각만이 마음을 이룹니다. 그리고 모든 생각 중에서, ‘나’ 생각이 그 뿌리입니다. 마음이라 불리는 것은 단지 ‘나’ 개념입니다. 19. 나넨 드레룸 이담 예데나 나다불 난 딸라이 샤 인디둠 운디 빠라 난 딸라이 샤 인디둠 운디 빠라 야나 비짜라 미 둔디 빠라 사람이 안으로 향해서 이 ‘나’ 생각이 일어나는 곳을 찾으면 ‘나’는 사라지고 지혜의 탐구가 시작됩니다. 20. 난 온드루 따낫뚜 나나 넨 드론 드라두 따나가 똔드 루메 운디 빠라 아두 따나가 똔드 루메 운디 빠라 따나두 뿐 드라맘 운디 빠라 이 ‘나’ 개념이 희미해지는 곳에서 하나의 존재, 바로 참나, 무한한 존재인 ‘나-나’가 나타납니다. 21. 난 엔눈 숄뽀룰 아마두 날루메 나낫뜨라 뚝깟 뚬 운디 빠라 나낫뜨라 뚝깟 뚬 운디 빠라 나마 딘마이 닉깟 딸 운디 빠라 ‘나’라는 용어의 영원한 의미는 ‘그것’(That)입니다. 왜냐면 ‘나’에 대한 아무런 감각이 없는 깊은 잠에서도 우리는 존재하기를 멈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22. 우달 뽀리 울람 우일 이룰 옐란 자담아 삿 따나 달 운디 빠라 자담아 삿 따나 달 운디 빠라 삿따나 나 날라 운디 빠라 육체, 감각, 마음, 호흡, 그리고 잠, 이 모두는 생명이 없고 실제가 아니며 실재Real 존재인 ‘나’가 될 수 없습니다. 23. 울라 두나라 우날부 베린 마이인 울라 두날 바굼 운디 빠라 울라 두날 바굼 운디 빠라 우날베 남아율람 운디 빠라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를 알기 위해서는 다른 아는 존재가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스스로 존재하는 그것은 자각이며 우리는 전적인 자각all Awareness입니다. 24. 이룩 꿈 이얄 까이얄 이샤 지발 갈 오루 뽀룰레 야발 운디 빠라 오루 뽀룰레 야발 운디 빠라 우빠디 우날베 벨 운디 빠라 피조물과 창조자의 본성nature에서 본다면, 그 둘은 본질적으로 하나입니다. 그들은 부가물adjuncts과 자각에 있어서만 차이가 있습니다. 25. 딴나이 우빠디 빗똘바두 딴 이샨 딴나이 우날 바담 운디 빠라 이샨 딴나이 우날 바담 운디 빠라 따나이 올릴 바달 운디 빠라 모든 속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신을 보는 것은 신을 보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는 순수한 참나로서 언제나 빛나기 때문입니다. 26. 따나이 이룻 딸레 딴나이 야리 달란 따니란 닷뜨라 달 운디 빠라 따니란 닷뜨라 달 운디 빠라 딴마야 니따이이 둔디 빠라 그것은 이원적이지 않기 때문에, 참나를 아는 것은 참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지식에서, 사람은 그것That으로 존재합니다. 27. 아리바리 야마이 윰 앗뜨라 아리베 아리바굼 운마이 이 둔디 빠라 아리바굼 운마이 이 둔디 빠라 아리바달 꼰드릴라이 운디 빠라 순수한 지식은 지식과 무지 둘다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순수한 지식에서는 아무런 대상이 알려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28. 따나 디얄 야데나 딴 떼리 힐삔 아나디 아난다 삿 둔디 빠라 아나디 아난다 삿 둔디 빠라 아간다 찌다 난담 운디 빠라 자신의 성품을 알았기에 그는 중단이 없는 의식과 희열로 아무런 시작과 끝이 없는 존재Being로 삽니다. 29. 반다 비닷뜨라 빠라 수감 웃뜨라 발 인다 닐라이 닛뜨랄 운디 빠라 인다 닐라이 닛뜨랄 운디 빠라 이라이 빠니 닛뜨라 람 운디 빠라 속박과 해방 너머에 있는 이 희열의 상태에 머무르는 것은 신을 섬기며 사는 것입니다. 30. 야나 뜨리얄 바두 떼린 예두 바두 따나 뜨라바 멘드란 운디 빠라 아두따나 뜨라바 멘드란 운디 빠라 따남 라마네 샨 운디 빠라 모든 자아가 사라지고, 그것으로서 사는 것만이 뛰어난 따빠스입니다. 참나인 신 라마나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밧뚜 Vazhthu] 1. 이루디갈 옐람 이라이바 나디야이 바루디 바낭기날 운디 빠라 발뚜 무랑기날 운디 빠라 (다루까 숲의) 모든 리쉬들은 그의 영광을 찬양하며 신의 신성한 발을 만짐으로써 경의를 표했습니다. 2. 웃뜨랄 꾸루디 우빠데샤 운디얄 숏뜨라 구루빠란 운디빠라 수망갈라 벤까단 운디 빠라 분별 있는 제자에게 이 ‘우빠데사 사람’은 촉망받는 벤까따 라마나인 위대한 구루에 의해 설명된 길입니다. 3. 빨란두 빨란두 빨빤누 라이람 빨란두 빨란둠 운디 빠라 빨미샤이 발가베 운디 빠라 이 작품이 수천 년 동안 오래 살기를! 라마나의 이름이 오래 살기를! 이 땅의 그의 모든 헌신자들이 오래 살기를! 4. 이샤이 예둡 뽀룸 셰비 마둡 뽀룸 바샤이아라 뗄보룸 운디 빠라 바리 빨라부리 운디 빠라 이 (가르침을) 노래하는 이들, 그것을 듣고 그 의미를 받아들이는 이들, 그들이 수백만 년 동안 살기를! 5. 깔꾸 마발갈룽 깟뜨루 난 당굿 땀 닐꾸 마발 갈룸 운디 빠라 니두리 바리예 운디 빠라 이 가르침을 공부하고 그것을 수련하는 이들, 그들이 수백만 년을 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