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라두 나르빠두 : 아누반담Ulladu Narpadu(실재에 대한 40연의 시에 추가된 40연의 시) [만갈람 Mangalam (기도문)] 예단깐네 닐라이야기 이룬디두밉 울라가멜람 예다나델람예다닌드립 아나잇뚤라굼 예루모마 뜨리바이야붐 예단 뽀룻땀예다날립 바이야멜람 예룬디두밉 옐라뭄 예두베 야굼아두다네 울라보룰란 삿띠야맘 아쪼루밤 아갓띨 봐입빰 지지자, 영혼, 근원, 이 전체 세상의 목적이자 힘, 이 모든 겉모습 뒤의 실재인 그것, 그것만이 존재합니다. 진리인 그것이 우리의 가슴 안에 거하기를. [요가 바시슈따 5-8-12.] [눌 Null (본문)] 1. 삿띠나 깟띠날 샬바갈룬 샬바갈라 찟땃띤 샬부 시다이유메 싯따짤 앗뜨랄 알라이빌라딜 앗뜨랄 지반묵띠 뻿뜨랄 아발이낙깜 뻰 현자와 함께 하면 집착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집착과 함께 환영도 사라집니다. 환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안정에 이르고, 그런 뒤에 살아 있는 중에 해방에 이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현자와의 교제를 바라십시오. [바자고빈담, ‘모하무드. 찬가’, v.19] 2. 샤두라부 샤라불란 샬뗄리비 샤랏딸 예두빠라맘 빠다밍 게이두모 오두마두 보다가나 눌뽀룰랄 뿐니얏딸 삔누모루 샤다갓딸 샤라 보나달 설교자들의 말을 듣는 것, 서적의 공부, 칭찬할만한 행위, 또는 다른 어떤 방법을 통해서도 지고의 상태에 이를 수 없습니다. 현자와의 교제 그리고 참나에 대한 탐구를 통해서만 지고한 상태에 이를 수 있습니다. [요가 바시슈따, 5-12, v.17.] 3. 샤둑깔 아발 사가바샤 난니날 예둑깜 인니야맘 옐라뭄 메닥까 딴뗀드랄 마루단 딴비샤베 비시리 꼰덴나 까리얌니 꾸루 현자와의 교제를 좋아하는 것을 배웠으면, 이 모든 수련법들이 왜 있습니까? 기분 좋고 시원한 남풍이 불고 있으면, 부채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요가 바시슈따, 2권, 197.] 4. 따반단 샨디라날 다이니야날 깔바갓딸 빠반단 강가이얄 빠루메 따바무달 임문드룸 예굼 이나이일라 사둑깔 땀마 다리샤낫딸 딴 열은 시원한 달빛에 의해 극복됩니다. 결핍은 귀중한 소원 성취의 나무에 의해, 죄는 신성한 갠지스 강에 의해 없어집니다. 이 셋 즉 열, 결핍, 그리고 죄는 비길 데 없이 뛰어난 현자의 위엄 있는 모습에 달아납니다. [수바쉬따 라뜨나 반다르가라, 3장, v.6.] 5. 깜마야만 띨땅갈 깔만난 데이반갈 암마갓뚜 깟끼나이예 아가밤 암마바바이 옌닐 날라뚜이마이 예이빕빠 사둑깔 깐니날 깐디다베 깐 단지 물일뿐인 신성한 강들과 돌과 진흙으로 만들어진 신상들은 현자만큼 강력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것들이 수많은 날 동안 사람을 순수하게 만드는 반면, 현자의 눈은 단지 한 번 흘낏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즉시 정화시킵니다. [바가바땀, 48장, v.31, 10번째 칸토] 6. 네바날 알마남 떼루바 넨마남 아비얌 옌날 아리바두메 데바니 아구메 아가이얄 알꾼 수루디얄 예가남 데바네 옌드루 제자: 신은 누구입니까?스승: 마음을 아는 자입니다.제자: 저의 참나, 영spirit은 저의 마음을 압니다.스승: 그러므로 그대는 신입니다. 스루띠 역시 아는 자, 하나의 신만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샹까라짜리야의 에까 슬로끼] 7. 올리유나 께두바갈 이난에나 끼룰빌락 올리유날 올리예두 까나두날 올리예두 올리마디 마디유날 올리예두 아두아감 올리다닐 올리유니 예나구루 아가마데 스승: 그대는 어떤 빛으로 봅니까?제자: 낮에는 태양의 빛, 밤에는 등불로 봅니다.스승: 어떤 빛으로 이 빛들을 봅니까?제자: 눈입니다.스승: 어떤 빛으로 눈을 봅니까?제자: 마음입니다.스승: 어떤 빛으로 마음을 압니까?제자: 저의 참나입니다.스승: 그러면 그대는 빛 중의 빛입니다.제자: 네, 저는 그것입니다. [샹까라짜리야의 에까슬로끼] 8. 이다야망 구하인압빤 예가맘 브람마 맛뜨람 아두아가 마가마 네레 아빈디둠 안마 바가 이다야메 샬바이 딴나이 옌니얄 알라두 바유 아다누단 알마낫딸 안마빌 니따나바이 가슴 동굴의 한 가운데서 ‘나-나’, 아뜨만으로서의 하나의 브람만이 빛납니다. 참나에 대한 탐구로 깊이 들어감으로써 또는 호흡과 더불어 마음을 통제함으로써 가슴에 이르십시오. [바가반] 9. 아학까마 랏떼 아말라 아짤라 아갓우루밤 아굼 아리베디 아갓따이 아갓뜨리두바 달라브 아가맘 아리베 아가비 달립빠 다리 참나의 형상을 한 순수하고 변함없는 의식은 가슴의 연꽃 안에 있습니다. 자아가 제거되면 이 의식은 해방을 줍니다. [데비깔로따람, v.46.] 10. 데감 가다니갈 자다미달 까가메눈 띠갈빌라달 나함 자달라밀 뚜일이닐 디나무루 나마디얄랄 꼬함 까라네반 울란우난 둘라룰라 구가이율레 소함 뿌라나바 루나기리 쉬바비부 수얌 올릴반 몸은 움직임이 없는 흙으로 된 항아리와도 같습니다. 그것은 ‘나’라는 의식이 없고, 매일 몸이 없는 잠에서 우리는 우리의 진짜 본성을 접촉하기 때문에, 육체는 ‘나’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나’는 누구입니까? 이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와 같이 가슴의 동굴에서 묻는 자들은 ‘나’, 신 그 자신, 아루나짤라의 쉬바로 빛납니다. [바가반] 11. 삐란다 데반딴 브람마 물랏떼 삐란다데바 난엔드루 뻬닙 삐란단 아바네 삐란단 아바니다문 이샨 나바나바나 반드리나무 나두 ‘누가 태어납니까?, 나는 어디에서 태어납니까?’라고 묻는 이만이 진정 최초의 근원인 브람만에게서 태어납니다. 그분은 진정 영원으로 태어납니다. 그분은 성자들의 신입니다. 그분은 항상 새로운 존재입니다. [슈리 바가반의 자얀띠를 기리며] 12. 이리부달 야넨날 이간디두가 옌드룸 오리빌 인반딴나이 올가 아리윰 우다롬바 로두따나이 오라부날 야루 까닥까 까랍뿌나이 꼰닷뜨루 ‘이 거친 몸이 나다’라는 개념을 벗어던지고 참나의 끊임없는 희열을 구하십시오. 이 일시적인 몸을 소중히 여기면서 참나를 구하는 것은 악어에 매달려 강을 건너려고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바가반, 비베까쭈다마니Vivekachudamani, v.84] 13. 다남 따밤벨비 달맘 요감박띠 바남 뽀룰샨띠 바이마이 아룰 모나닐라이 사가말 사바리부 샬뚜라부 비딘밤 데간마 바바마랄 뗄 자선, 고행, 희생, 다르마, 요가와 박띠; 그리고 천상이라는 목표, 평화, 진리, 은총, 침묵, 안정, 죽음이 없는 죽음, 지식, 포기, 해방, 희열, 이 모든 것들은 몸이 참나라는 생각을 멈춤에 의해 야기됩니다. [바가반] 14. 비나이윰 비박띠 비요가만 냐남 이나이야바이얄 껜드라인 디날레 비나이박띠 요가무날 바인디다난 인드리아바이 옌드루밀단 아가마날레 운마이 얌 ‘행위, 또는 헌신, 또는 합일, 또는 지식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것은 ‘이 행위, 또는 무관심, 또는 분리, 또는 무지는 누구의 것인가?’라고 묻는 것입니다. 이렇게 물으면, 자아는 사라집니다. 그 안에 이 여덟 가지가 존재한 적이 없었던 참나로서 사는 것, 그것이 진정한 존재입니다. [바가반] 15. 샥띠이날 따미양군 딴마이 우날아다길라 싯디가난 셸바메나 쩨띡꿈 삣딸꿋 옌나이 예룹삐비딜 옘맛띠 뗍바레나 쬰나무다 반가다이인 조두 어떤 우매한 자들은 그들이 자신의 것이 아닌 에너지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기적적인 힘을 찾느라 바쁩니다. 그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너희가 내 발을 도와주면, 이 적들은 자기들이 내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게 될 거야)’라고 친구들에게 허풍을 떠는 불구자의 것과도 같습니다. [바가반] 16. 찟땃띤 샹띠야데 싯다마 묵띠예닐 찟땃띤 셰이가이인드리 싯디야 싯디갈릴 찟딴쩰 바렝간 찟따 까락깐딜 묵띠수간 또이발 모리 마음의 정지stilling가 진정한 해방입니다. 기적적인 힘들은 마음의 행위가 없으면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 힘들에 마음을 두고 있는 이들이 어떻게 마음의 모든 활동의 끝인 해방의 희열로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바가반] 17. 부바란 땅가이라이 뽈리유일 땅가라두 꼬부란 땅기유루 꼬라니간 마바랑골 반디셸루 반수마이야이 반디바이 야두달라이 꼰두날리 꼰다데발 꼬두 세상의 짐을 지는 것은 신이지만, 거짓된 자아는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원 탑에 있는 그림처럼 얼굴을 찌푸리며, 그 짐을 진 척 합니다. 만약 여행객이 기차에 타서 그 짐을 내리지 않고 힘들게 머리에 지고 있다면, 그것은 누구의 잘못입니까? [바가반] 20. 이루물라이 나두말 빠디바일 이단멜 이루무 뽀룰울라 니람빨라 이밧뜨룰 오루뽀룰 암발라 룸베나 불레 이루비랄 발랏떼 이룹빠둠 이다얌 흉부의 아래와 복부의 위, 두 젖꼭지 사이에는 여러 색을 가진 여섯 개의 기관이 있습니다. 이들 중, 백합 봉오리처럼 보이는 것이 가슴 중심의 오른쪽으로 손가락 두 마디쯤 떨어져 있습니다. [아슈땅가 흐리다얌, 말라얄람] 19. 아단무가 미가룰라 따가물라 시루뚤라이 아다닐라 사디요 다만뚤라 띠룬다맘 아다나야 시릿뚤라 아길라마 나디갈 아두발리 마나돌리 아밧뜨리나 디룹삐담 그 입은 닫혀있습니다. 그 빈 공간 안에 모든 욕망으로 가득한 짙은 어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모든 큰 신경들이 거기에 모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호흡, 마음, 그리고 지식의 빛의 집입니다. [아슈땅가 흐리다얌, 말라얄람] 20. 이다야말랄 구하이야가마 일라기라이예 구게산 예나 옛땁빳똔 니다마나이야 구게샨 야네눈소감 바바나이단 닌누 담빌 띠다무루 나네눈디담볼 앗비아사 발랏딸 앗데바이 닐낄 시다이유다나 네눔아빗다이 솅가디론 예디리룰뽈 시다이윰 안드레 현재는 자아라는 생각이 몸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가슴 연꽃 안이 자신의 집인 신은 동굴의 신으로 극찬 받고 있습니다. 만약 수련의 힘에 의해 ‘나는 그이다, 나는 동굴의 신이다’라는 느낌이 몸 안의 자아만큼이나 굳게 자리 잡으면, 그대가 필멸의 몸이라는 환영은 떠오르는 태양 앞의 어둠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바가반] 21. 옙뻬룽 깐나디인 깐니바이야붐 니랄라가 예디레 똔드룸 입삐라반 짯뚜일갓 껠라마브 이다야메나 이샤입빠 래도 솁뿌디옌드레 뷔나붐 라마눅꾸 바시따무니 솁뿌긴드란 입뿌비인 우일껠람 이다야미루 비다마굼 옌눙 깔레. 라마가 ‘우리가 사물들의 모습을 보게 되는 큰 거울은 어느 것입니까? 세상의 모든 존재들의 가슴이라 불리는 그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바시슈따는 ‘깊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두 개의 다른 가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요가 바시슈따, 5-78, v.32,33] 22. 꼴랏딱까 둠딸라 딱까두맘 입비란딘 꾸루 껠라이 알랏딸까 무담빈말 바갓또리다 띠다야메나 아마인다 앙감 딸랏딱까 도라리바 까라기다 양골라 딱까 다멘드루 울랏뚯꼴 앗둘룸 뿌람우물라 둘벨리일 울라 단드람 ‘이들 중 하나는 받아들일만하고, 다른 하나는 거부되어야 합니다. 그것들이 어떻게 다른지 들어보십시오. 물리적 몸의 어딘가에 자리한 심장이라 불리는 기관은 거부되어야 합니다. 순수 의식의 형상을 가슴은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그것은 안에도 있고 바깥에도 있습니다. - 그것은 내면도 없고 외면도 없습니다.’ [요가 바시슈따, 5-78, v.34,35.] 23. 아두베 묵끼야이다얌 아단 깐닙 아길라무메 아만 디룩꿈 아두바디 옙뽀룻꿈 옐라쩰 방갓굼 아두베 일람 아다날레 아나잇뚜일꿈 아리바두베 이다야메나 아라이야 라굼 시다야닐꿍 깔뽈 자다부달린 아바야밧똘 시루구 란드랄. ‘그것이야말로 극히 중요한 가슴입니다. 그 안에 이 모든 세상이 있습니다.그것은 모든 만물을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그것은 모든 부의 근원입니다.그러므로 의식은 모든 만물의 가슴이라 일컬어질 수 있습니다.가슴은 돌처럼 움직임이 없는 필멸의 육체의 일부분이 아닙니다.’ [요가 바시슈따, 5-78, v.36,37] 24. 아달리날 아리부 마야만숫다 이다얏떼 아갓따이 쩰꿈 샤다나이얄 바다나이갈 오두바유 오둑까무메 사룬따네 ‘그러므로 완전한 의식인 순수한 가슴 안에 자아를 합치는 수련에 의해, 호흡 뿐 아니라 마음의 경향성도 가라앉을 것입니다.’ [요가 바시슈따, 5-78, v.38] 25. 아길라 부빠디 아간드라 아리베두 아가마 찌바멘 드라니삼 아갓떼 아갈랏 디야남 아다날 아갓띤 아길라 바샥띠 아갓뜨루 모든 한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쉬바로서의 ‘나-나’를 항상 명상함으로써, 그는 모든 집착을 극복합니다. [데비깔로따람, v.47.] 26. 비다비다마 닐라이갈엘람 비짜란 세이두 미짜이야루 빠라마빠담 야돈드룬도 아다나이예 디다마가 아갓딸 빳뜨리 아나바라담 울라길빌라이 야두뷔라 예두샤갈라 비다마나 똣뜨랑 갓굼 예달따마다이 아갓뚤라도 아다이 아린다이 아다날랍 빨바이이나이 아갈라 덴드룸 아샤이볼 울라길 빌라이야두 비라 ‘존재의 여러 상태를 탐구했겠지만 그러나 그 지고의 실재의 상태만을 굳게 붙들고, 오 영웅이여, 세상에서 그대의 역할을 유희하십시오. 그대는 보이는 모든 것들의 가슴에 있는 진리를 알았습니다. 그 실재로부터 절대 돌아서지 말고, 오 영웅이여, 마치 그것과 사랑에 빠진 것처럼, 세상에서 유희하십시오. [요가 바시슈타, 5-20, v.2-23.] 27. 뽈리마나 예루찌마길 붓뜨로 나기 뽈리마납 빠다입뿌 베룹뿟뜨로 나기 뽈리무얄 반또닥까 뭇뜨로 나기 뿌라이일라나 울라길 빌라이야두 비라 말레눔빨 깟뚜비두 빳또 나기 만누 사마나기 옐라닐라이마이 깐눔 벨라이갈 베닷띠야이봐 벨리일 세이두 벤디야발 울라길 빌라이야두 비라 열정과 즐거움을 가진 듯 보이며, 흥분과 혐오를 가진 듯 보이며, 인내하면서 일을 주도하는 듯 보이지만, 집착이 없이, 오 영웅이여, 세상에서 유희하십시오.집착에 대한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 마음의 평정을 가지며, 모든 상황에서 그대가 맡았던 역할에 맞춰 겉으로 유희하면서, 오 영웅이여, 세상에서 그대가 하고 싶은 대로 유희하십시오. [요가 바시슈타, 5-20, v.24-26] 28. 아리분마이 니따남 안마 빗따반 아리발 뿔란셋뜨라 나단 아리방기 야나나리 방굴리샤 딴깔라 깔라나반 샤비나이마이 비라네나 짯뜨루 아뜨만에 대한 지식으로 진리 안에 자리 잡은 사람, 다섯 가지 감각을 정복한 사람, 그를 지식의 불, 지식의 번개를 휘두르는 이, 시간의 정복자, 그리고 죽음을 죽인 영웅이라 부르십시오. [요가 바시슈타, 미확인 시] 29. 땃뚜방 깐다발꾸 따메 발라루몰리 붓디발루 붐바샨땀 뽄다두메 잇따라이일 따루바라 가디 사갈라 구낭갈룬 세라 빌랑가레나 뗄 이 땅에서 봄이 오면 나무들이 그 나뭇잎의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빛나듯이, 진리를 본 사람은 커져가는 빛, 지성, 힘으로 빛날 것입니다. [요가 바시슈타, 5-76, v.20] 30. 셰이마이율랑 셴드루까다이 껫발볼 바다나이갈 떼이마난 셰이둔 셰이야데 아바이갈 또이마난셰이 인드레눈 셰이다데 잉가샤이밧뜨룽 까나빌 꾼드레리 빌발 꾸리 생각이 멀리서 방황하고 있을 때 이야기를 들은 사람처럼, 집착이 없는 마음은 행위하고 있는 동안에도 움직임이 없습니다. 그러나 집착에 빠진 마음은, 언덕을 올라가 굴러떨어지는 꿈을 꾸며 여기에서 움직임 없이 누워 자는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더라도 활동적입니다. [요가 바시슈따, 5-56, v.13, 14] 31. 반디뚜일 바눅깝 반디셀랄 닛뜨라로루 반디따닐 웃뜨리두단 마누메 반미얌 우나부달 울레 우랑구메이 냐닉꿈 아나또릴 니따이 우락깜 자고 있는 승객은 (수소가 끄는) 수레의 움직임, 그것의 멈춤과 출발을 알 수 없듯이, 행동, 명상, 잠은 육체의 수레에서 자고 있는 현자에게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바가반] 32. 나나부 까나부뚜일 나두발 깝빨 나나부 뚜일뚜리야 나맛뚜 예누마 뚜리얌아데 울라달 똔드루문 드린드랄 뚜리야 아디단 뚜니 탐구하는 자에게는, 깨어있음과 꿈과 잠을 넘어서는 상태가 있습니다. 그것은 깨어있는 잠, 뚜리야라고 불리는 네 번째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 뚜리야 상태만이 실제이고 세 개의 표면상의 상태들은 환영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이 ‘네 번째’는 초월적 상태라고 불립니다. [바가반] 33. 상지다 아가미양갈 샤라바 냐닝꿀 빈주메날 벳뜨랄껠 빅꾸빌람 분쫄람 앗따보이 까이마이유랍 빳띠니 옌자다두뽈 깔따보 무비나이융 깐 갸니가 상찌따와 아가미로부터 자유로울 때 쁘라랍다를 가진다는 말은 단지 무지한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형식적인 답변일 뿐입니다. 남편이 죽으면 여러 아내 중에서 누구도 과부 신세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듯, 행위자가 사라지면, 모든 세 가지 까르마도 사라집니다. [바가반] 34. 막깔 마나이비무달 맛뜨라발갈 알빠마디 막깟꼬루 꾸둠바 마나베 믹까깔비 울라바담 울랏떼 온드랄라반 눌꾸둠밤 울라두 요갓따다이야 욜 우매한 사람들에게는 아내, 아이들 그리고 딸린 식구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가족만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이 배운 사람들의 마음에는 요가에 있어서 장애물인 서적, 이론, 견해들로 된 많은 가족이 있습니다. [수바쉬따 라뜨나 반다가라, 쁘라까라나 VI, 샹따 라사 니르데샤, v. 13.] 35. 예룻따린다 땀삐란다 뗑게옌 드렌니 예룻따이 똘라익까 예나돌 예룻따린덴 짯땅골 옌디랏띤 샬붓뜨랄 쇼나기리 빗따가네 베랄 빌람부 ‘우리는 어디에서 태어났는가?’라고 물음으로써 운명의 글자들을 없애려고 하지 않는 학문이 있는 사람들에게 글자가 무슨 소용입니까? 오, 아루나짤라의 신이시여, 그들은 녹음기가 아니고 다른 무엇입니까? 그들은 그 뜻은 깨닫지 못하고 단지 말을 배우고 따라합니다. [바가반] 36. 깟뜨룸 아당가릴 깔라다레 우인달 빳뜨루 마답뻬인 빠루인달 슛뜨루빨라 신다이바이 노이우인달 실떼딘 오달우인달 우인다돈 드란드렌 드루날 배움이 없는 이들은 배움이 있지만 (마음이) 진정되지 않은 이들보다 더 쉽게 구원받습니다. 배우지 못한 이들은 오만한 악마의 손아귀로부터 자유롭고, 소용돌이치는 많은 생각과 말들의 병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그들은 부에 대한 광적인 추구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그들은 아주 많은 질병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바가반] 37. 옐라 불라군 뚜룸바 이누 마라이갈 옐라메 까익꿀 이룬달룸 뽈라 뿌갈찌얌 베시바삼 뿍까 라디마이 아갈라비달 암마 아리두 사람이 세상을 한 가닥 지푸라기로 여기고 그 손에 신성한 구전 지식을 쥐고 있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만약 그가 그 역겨운 매춘부인 아첨에게 굴복했다면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힘들 것입니다. [슈리 사다쉬바 브라멘드라의 사다까 아바스따] 38. 딴안드리 야룬두 딴나이야 렌쫄이넨 따단나이 발뚜기눈 딸뚜기눈 딴엔나 딴삐라렌 드로라말 딴닐라일 뻬라말 딴엔드루 닌드리다베 딴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별개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진정한 상태로부터 방향을 바꾸지 않고, 그가 항상 자신의 참나 안에 거한다면, 그와 맞지 않는 이가 누가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그에 대해 말하는 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그가 스스로를 칭찬하거나 비난한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바가반] 39. 앗두비담 옌드룸 아갓뚜루가 올뽀둠 앗두비담 셰이가이일 앗뜨랄까 뿟띠라네 앗두비다 무불라가 따궁 구루비노 앗두비담 아가 다리 가슴 안에 아드바이따를 간직하십시오. 행위 속에서 절대 아드바이따를 행하지 마십시오. 그것을 세 가지 세상 모두에 적용한다 할지라도, 오 아들이여, 그것은 구루에게는 적용되지 않을 것입니다. [샹까라짜리야의 따뜨보빠데사,v.87] 40. 아길라 베단따 싯단따 사랏따이 아감운마이 야가 아라이반 아감샷뚜 아감아두 바길 아리부루 바마웁 아감아데 미짬 아리 나는 진정 베단따 신조의 마지막 정수를 선언할 것입니다. 자아가 죽어서 그것 즉 순수 자각의 참나가 되면, 그것만이 머무릅니다. [산스끄리뜨 시를 바가반이 따밀어로 바꾼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