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욕망은 마음에 인상을 남길 때만 문제가 됩니다 저 자신에게 욕망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은 꽤 쉽지만, 그것이 진실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제게 지금 무언가가 필요하다면, 그것이 필요에 의한 것인지 욕망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를 들어서 제가 무엇인가를 먹고 있다고 가정해 보죠. 저는 약간의 음식을 먹었고, 조금은 배가 고프다고 여전히 느끼고 있는 상태라면 조금 더 먹는 쪽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조금의 음식을 더 먹는 것이 필요에 의한 것인지, 혹은 욕망인지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습니까? 저 자신은 생존하기 위하여 먹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지만, 진짜 필요로 한 것이 그 경계를 넘어 자기 탐닉의 욕망으로 넘어가는 때는 언제입니까? 배가 고프면 먹습니다. 목이 마르면 마십니다. 이런 것은 욕망이 아닙니다. 당신은 먹고, 마시고, 그러고는 그 사실에 대해 잊게 됩니다. 이틀 전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를 기억합니까? 기억을 못한다면, 어떠한 욕망도 가미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냥 당신이 한 일이며, 그 일은 필요에 의해 한 것이라 곧 잊어버린 것입니다. 사실 저는 그 특정한 식사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매일 같은 것을 먹는 경향이 있어, 그 식사 때 무엇을 먹었는지에 대해선 추측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이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당신이 매일 같은 것을 먹는다면, 그것은 욕망이라 할 수 없습니다. 매 순간 숨을 들이쉬고 있지 않습니까?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까? 숨을 들이쉬기 전에 숨을 들이쉬려는 욕망을 냅니까? 숨을 들이쉬는 것을 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아마도 죽게 되겠지요. 그래서, 숨을 들이쉬는 것은 가장 중요한 필요입니다. 이 하나를 충족시킬 때까지는 다른 것들을 충족시키기 위한 시작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욕망이란 사실상 마음속에 새겨 두고 있는 그 무엇이며, 그것을 충족시키는 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기에 당신을 괴롭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욕망이란 기억 속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호흡은 자동적으로 진행되는 것이기에 이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호흡은 당신에게 “내 호흡에 대한 욕구를 채워라.”고 말하며 성가신 잔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음식도 다소 유사하다고 하겠습니다. 배고픔을 느낄 때, 입에 음식을 집어넣고, 그것을 삼키며, 그것에 대해 잊게 됩니다. 음식이 뱃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것에 대해 잊게 됩니다.채워지지 않는 욕망이란 당신을 괴롭히게 될 욕망들입니다.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욕망은 문제를 유발하게 됩니다. 욕망은 항상 자기를 밖으로 밀어내어 “난 이것을 가져야만 해, 나는 이것을 가져야만 해.”라고 말합니다.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채우려는 압력 때문에 이 현상계가 나타납니다. 이것이 삼사라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또 한 번의 탄생을 통하여 다시 여기에 있는 이유입니다. 만일 욕망이 없다면 당신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욕망 때문에 거듭 몸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욕망은 애착이며, 애착은 우리에게 끝없는 문제를 불러일으킵니다. 욕망을 완전히 잊는 것이 더 좋습니다. 기억 속에 머물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삶의 필요를 충족하는 것은 당신에게 어떠한 문제도 일으키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다른 요인들입니다. 예, 욕망들을 충족시키는 것은 끝없는 고통의 원인인 것 같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날카로운 일격을 가하며, 거듭 욕망들을 채우기 위하여 저를 내몰고 있습니다. 욕망들은 마음속에 인상을 남길 때만 문제가 됩니다. 위험한 것은 욕망들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남기는 인상들입니다. 새는 하늘을 날아갈 때 공중에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물고기는 헤엄칠 때 물 표면에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마음에 어떠한 인상들이나 발자국들을 남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에겐 전혀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이 발자국들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 욕망 그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당신은 마음속에 생각들을 차곡차곡 저장해 둡니다. 따라서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등과 같은 말을 하게 됩니다. 이것들이 바로 당신을 거듭하여 이 세상일에 말려들게 하는 발자국들입니다.제자와 함께 숲 속을 걷고 있던 스승이 있었습니다. 폭우가 좀 있었던 탓에 작고 얕은 시냇물이 불어나 훨씬 더 깊은 강이 되어 버렸습니다. 두 사람은 옷을 어깨에 걸치고 강을 건널 준비를 하였습니다. 마침 그 강둑에는 강 건너편으로 건너가지 않으면 안 되는 매춘부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녀는 결혼식에서 춤추기로 예약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는 완전한 무도회 의상을 입고 있었으며 강물이 목까지 오는 깊이였기에 건너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스승은 그 여자를 업고서 강 건너편으로 간 후 내려놓았습니다. 그 여자는 갈 길을 갔고 제자와 스승 역시 가던 길을 계속 갔습니다.제자는 스승님이 한 일에 대해 매우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스승님은 나에게 절대 여성에게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분은 매춘부를 업어서 이 강을 건네주었다.”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꽤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습니다.마침내 10마일 정도를 걸어간 뒤 그는 스승에게 돌아서서 말했습니다. “스승님,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스승님은 “그래.”라고 했습니다.“스승님께서는 저에게 결코 여자를 만지지 말라고 하셨잖습니까?”“그랬지.”“그러면 스승님께서 이 강을 건너게 해준 그 여자는 어떻습니까? 그녀는 매춘부였지만 스승님께서는 업고서 강을 건네주셨지 않습니까?”스승은, “그 여자는 도움을 원하고 또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녀는 일을 하러 강을 건너야 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녀는 강을 건널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녀를 업고서 강을 건너게 해주었다. 나는 내 할 일을 했고, 그녀를 내려놓고는 그 일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 너는 왜 아직도 그녀를 업고 있느냐? 나는 그녀를 수 마일 전에 내려놓았는데.”라고 대답했습니다.매춘부는 여기에서 욕망을 가리킵니다. 스승은 필요한 일을 한 것이며, 다음에는 그것에 대해 다 잊은 것입니다. 제자는 그 사건에 대한 생각, 즉 발자국을 머릿속에 두고 있었으며, 이러한 생각들 때문에 10마일을 걸어오면서 고통을 받은 것입니다. 만약 어떤 일을 할 필요가 있다면, 그 일을 하고 잊어버리십시오. 그 이후에 그 일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다녀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머릿속에 오래 머물고 있는 생각들이 당신을 삼사라로 다시 태어나게 하고, 끝없이 순환하는 생사윤회의 바퀴로 다시 태어나게 합니다. 발자국들을 남기는 욕망이 있을 때마다 삼사라는 존재합니다. 이러한 종류의 욕망이 있는 곳에 속박 이 있습니다. 자유는 욕망이 전혀 없는 곳에 있습니다. 이러한 욕망이 없는 상태가 니르바나요, 니르바나의 순수한 상태입니다. 니르바나란 ‘욕망이 없음’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