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2

11. (까르마) 요기는 결과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 자신을 더 정화하기 위하여, 그는 여전히 몸, 감각, 마음, 지성으로 행위를 계속한다. 12. 행위의 결과에 대한 기대를 계속 버림으로, 요기는 평화를 얻는다. 반면에 자신의 탐욕을 위하여 행위하는 이기적인 사람은 일로 묶인다. 13. (이전까지는 마음이 순수하지 못한 사람에게, 사심 없는 행위가 행위의 포기보다는 우수하다고 하였다. 이제 순수한 마음의 사람에게 행위의 포기가 우수하다고 말한다) (지식에 헌신하고 있는 자신을 식별의 눈으로 보았을 때 모든 행위가 산만하게 하기에, 혹은 문득 자신의 몸과 모든 창조물의 몸과 우주적 꿈의 모든 대상에 편재하는 우주의 빛 혹은 에너지를 보는 요기는 자신이 행위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의 마음으로 모든 행위를 포기한 자기 통제의 사람은 아홉 문이 있는 도시(몸)의 주인으로서 행위를 하지도 않고 행위가 일어나도록 하지도 않은 채 행복하게(희열로) 머문다. 14. 이 세상의 신은 세상에 행위자도, 행위도, 행위와 행위의 결과와의 연결도 직접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이 셋은 자연(스와바바, 쁘라끄리띠, 마야 즉 ‘구나로 이루어진 신성한 마야)이 한다. 15. 브람만은 누구의 선과 악을 평가하지 않는다(바사나 즉 자연의 인상이 그것을 한다. 자신을 자연과 동일시하면 묶인다). 내면의 지식은 무지로 덮여 있다(신은 모두에게 같다). 그래서 모든 존재는 미혹된다. 16. 그러나 자신의 무지가 참나(자아 너머에 있는 참나는 죄와 덕, 기쁨과 슬픔에 접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모든 것의 목격자이다)의 지식으로 파괴된 사람에게, 그의 지식은 태양처럼 (태양이 모든 대상을 빛나게 하듯이) 지고의 존재(불멸의 존재, 무한한 신, 브람만)를 나타나게 한다. 17. 그의 지성이 그것(지고의 것, 신)에 자리 잡고, 그의 마음이 그것에 고정되고, 그것에 헌신하고 있고, 그의 최고의 피난처가 그것인 사람은 그의 불순물이 참나의 지식에 의해 깨끗해져 돌아옴이 없는 상태에 이른다(참나 깨달음은 남아있는 오점을 없애기에, 다시는 몸을 입는 삶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감각 대상의 즐거움이 아니라 신과의 접촉으로 오는 희열에, 브람만에). 18. 참나를 깨달은 사람은 학식과 겸손을 구비한 브람민(삿뜨바 에너지가 우세), 소(라자스 에너지가 우세), 코끼리(따마스적 에너지가 우세), 개 그리고 까스뜨 바깥의 사람에서 같은 참나를 본다(그 모든 존재 안에 똑같이 지고의 분, 존재, 의식, 희열이 있음을 본다). 19. 모든 곳에서 오점이 없는 브람만과의 단일성(하나임)을 볼 때, 브람만에 자리를 잡으며(쁘라끄리띠에 의해 오염되지 않을 때 브람만은 모든 곳에서 같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끊임없는 변화 너머로 간다(초월한다. 일어선다). 20. 그대가 브람만에 자리를 잡게 되었을 때, 그대의 이해는 의심이 없으며, 아무런 미혹이 없다. 브람만을 깨달은 자는 좋은 것을 얻어도 기뻐하지 않고 좋지 않은 것을 얻어도 슬퍼하지 않는다(몸을 참나로 여기는 사람에게만 즐거움과 고통을 일으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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