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바드 기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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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바드 기따 1>

바가바드 기타

지은이 : 슈리 샹카라차리야
옮긴이 : 김병채
출판사 : 슈리 크리슈나다스 아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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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슈리 샹카라차리야의 주석서는 현존하는 바가바드 기타의 주해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그는 그의 주석서의 필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유명한 기타 샤스트라는 모든 베다 가르침의 진수를 요약한 것이다. 그 의미를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그 가르침의 명료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하여 여러 주석자들에 의해 단어별, 문장별로 나누어 설명되었으며 또 그것의 의미가 비평적으로 검토되었다.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그것이 일반인들에게 가지각색의 그리고 매우 상반되는 학설들로 가르쳐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따라서 나는 기타의 엄밀한 의미를 정하기 위하여 간략한 주석서를 쓰기로 하였다.” 샹카라의 바가바드 기타는 오랜 세월에 걸쳐 권위 있는 텍스트로 전해져 왔으며, 그의 이 주석서는 이후에 중요한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슈리 알라디 마하데바 샤스트리의 영문 번역본은 1897년 첫 출판된 이래 당대의 검증을 통과했으며, 샹카라의 바가바드 기타 주석서에 관한 가장 뛰어난 영어 번역본으로 100년 가까이 사용되고 있다. 7년 동안 4판이 발간된 이 위대한 책을 사마타 영적 고전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출판한 것은 하나의 특전이자 축복이다

 

 

차례

 

서문 초판 서문 차례 기타 카라디 니야사 기타 명상 바가바드 기타 바슈야 소개 1장 아르주나의 낙담 2장 샹키야 요가 3장 카르마 요가 4장 갸나 요가 5장 산야사 요가 6장 디야나 요가 7장 비갸나 요가 8장 아비야사 요가 9장 최고의 지혜와 비밀 10장 신성한 나타남들 11장 우주적인 모습 12장 박티 요가 13장 물질과 영혼 14장 세 구나들 15장 지고의 영 16장 영성과 물질 17장 세 가지 믿음 18장 결론 기타 마하트미얌 각 장들의 내용 옮긴이의 말

 

 

책 속으로

 

참나는 불멸이다. 이제 자신의 의무에 당황하고 슬픔의 거대한 바다에 깊이 빠진 아르주나를 구원하는 데는 참나 지식 외의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서, 그가 슬픔에서 벗어나도록 돕기를 원하는 신 바수데바(크리슈나)는 다음과 같은 말로 그에게 참나 지식을 소개하였다. 슈리 바가반이 말했다. 11. 그대는 슬퍼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슬퍼하면서도 지혜로운 사람처럼 말하고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슬퍼하지 않는다. 비슈마나 드로나 같은 사람들에 대해 슬퍼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품행이 좋은 사람들이며, 그들의 진정한 본성에서 그들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그대는 “나는 그들의 죽음의 원인이다. 그들이 없이 홀로 남겨진 나에게 왕권과 다른 것들의 즐거움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위해 슬퍼했다. 그리고 그대는 또한 현자들의 말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그대는 미치광이처럼 자신 안에서 어리석음과 지혜라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왜냐하면 참나를 알고 있는 현자들은 살아 있는 자를 위해서도 죽은 자를 위해서도 슬퍼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나를 아는 사람들만이 현명하다. 그러므로 계시서(스루티)는 말한다. “온전한 상태의 지혜(판디트야, 즉 참나의 지식)를 얻어서……”(브리. 우. 3장 5. 1) 다시 말해, 그대는 진정으로 영원하며 진정 슬퍼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슬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는 어리석다. 질문: 왜 그들에 대해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까? 대답: 그들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질문: 어째서 그렇습니까? 대답: 주 크리슈나가 말씀하신다. 12.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적은 결코 없었으며, 그대와 저 왕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들 중 어느 누구라도 이 다음에 결코 존재하기를 그칠 때가 없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은 적이 결코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항상 존재하였다. 즉, 과거에 몸들은 탄생과 죽음을 거듭하였지만 나는 항상 존재하였다. 마찬가지로 그대도 존재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대는 항상 존재하였다. 이와 같이 저 왕들도 결코 존재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은 항상 존재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존재하기를 그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몸들이 죽은 뒤에도 반드시 계속 존재할 것이다. 참나(아트만)로서, 우리는 모든 세 가지 시간대(과거, 현재, 미래)에서 영원하다. ... 참나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어떻게 참나는 변하지 않습니까? 다음 구절이 그 해답이다. 20. 참나는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과거에 생긴 것이 아니며 미래에 존재하기를 그치지도 않는다. 태어난 적이 없으며, 영원하고, 불변하며, 오래된 것인 참나는 몸이 죽어도 죽지 않는다. 참나는 태어난 적이 없다. 참나 안에는 탄생과 같은 조건의 변화가 없다. 참나는 죽지도 않는다. 이것은 죽음이라고 불리는 조건의 마지막 변화도 부정한다. ‘결코’는 모든 변화를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따라서 참나는 결코 태어난 적도 없고, 결코 죽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참나는 한때 존재했다가 이후에 존재하기를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어법에서는 어떤 사람이 한때 존재했다가 이후에 존재하기를 그칠 때 그가 죽는다고 말한다. 몸과 달리 참나는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다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참나는 태어난 적이 없다. 왜냐하면 존재하지 않았다가 생겨나는 사람을 태어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참나는 그와 같지 않다. 그리고 참나는 죽지 않으므로 영원하다. [비록 처음과 마지막 변화들을 부정함으로써 모든 변화들을 부정했지만, 여기에서 구체적으로 상술되지 않았어도, 움직임과 같은 어떠한 조건의 변화도 없음을 암시하기 위하여 ‘변하지 않으며’ 등의 말들로 중간의 변화들을 직접 부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겨졌을 것이다.] 참나는 변하지 않는다. 참나는 언제나 한결같고, 쇠퇴(아파크샤야)로 알려진 조건의 변화들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부분들이 없으므로 참나 자신의 본질은 줄어들지 않는다. 속성이 없으므로 참나는 어떤 속성을 잃고 줄어들지 않는다. 참나는 태고부터 존재하며, 쇠퇴의 반대인 성장(브리디)으로 알려진 변화를 겪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부분들이 증가하여 크기가 커지는 것을 성장하고 일신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부분들이 없으므로 참나는 과거에 새로웠던 것처럼 지금도 새롭고 미래에도 새로울 것이다.(즉, 언제나 같을 것이다.) 참나는 결코 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몸이 죽을 때도 참나는 죽지 않는다. 참나는 몸이 변형될 때도 변형되지 않는다. 동어 반복을 피하기 위하여, 죽임은 변형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즉, 참나는 변형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 절은 참나 안에는 여섯 가지(탄생, 존재, 성장, 변형, 쇠퇴, 죽음) 바바 비카라들이 없음을 가르치고 있다. 여섯 가지 바바 비카라들이란 세상의 모든 바바 즉 존재들이 종속되는 여섯 조건의 변화(비카라)들이다. 전체적으로 이 구절은 참나에는 어떤 종류의 변화도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앞의 절에서 ‘둘 다 바르게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한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 슈리 샹카라차리야 (788-820 A. D.) 슈리 샹카라차리야가 인도는 물론 세계에서 배출한 가장 위대한 철학자라는 데 대해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는 자신 안에 철학자, 헌신자, 신비가, 시인과 종교개혁가의 내용을 통합시킨,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독특한 존재이다. 비록 그는 1,200년 전의 사람이었지만 오늘 날까지도 이 영적 천재의 삶과 철학은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가 태어났을 당시 인도는 종교와 철학 상의 갈등으로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종교의 숫자만도 72개에 달했으며, 각 종파들 간에 대립과 다툼이 극심해 그 어디에도 평화가 없었다. 종교는 자신의 순수성과 정신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한때는 현자들과 성자들과 요기들이 행복하게 살았던 땅에 이제는 어둠과 미신과 편협한 신앙이 압도하고 있었다. 이러한 혼란을 잠재우기 위한 엄청난 의무는 오직 신적인 존재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때에 샹카라차리야가 태어났다. 그는 그 일을 하였으며 또 그것을 완수하였다. 32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에, 샹카라차리야는 힌두 종교의 바탕으로 아드바이타 베단타 철학을 확고하게 세웠다. 오늘날 인도의 중심 사상인 베다 다르마는 샹카라차리야에 기인하고 있다. 베다 종교에 반대하는 세력은 오늘날보다 샹카라차리야 시대에 더욱 많았으며 강력하였다. 그러나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 샹카라차리야는 그들 모두에게 베다 다르마와 아드바이타 베단타의 원래의 순수성을 되찾게 만들었다. 그가 사용하였던 무기는 순수한 지식과 영성이었다. 태어남 샹카라차리야는 서기 788년 인도 남부 케랄라에 있는 작은 마을 칼라디에서 아버지 쉬바구루와 어머니 아리얌바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매우 가난하였으며 오랫동안 아이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가까이 있는 바닥쿤나탄 사원으로 가서 쉬바에게 아이를 달라고 기도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쉬바가 꿈에 나타나 그들에게 말하였다. 쉬바는 그들에게 수명은 짧지만 영리한 철학자가 될 아이를 원하는지 아니면 평범한 아이를 원하는지를 선택하라고 하였다. 부부는 전자를 선택하였으며, 그래서 샹카라차리야가 아름다운 계절인 봄에 태어났다. 쉬바구루는 샹카라차리야가 일곱 살 때 세상을 떠났다. 그의 어머니는 비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들에게 경전들을 공부하도록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공부에 특이한 재능을 보였다. 샹카라차리야의 어머니는 아들을 장가보내려고 하였지만 그가 세상을 포기하고 고행자가 되겠다고 확고한 결의를 보이자 어머니는 매우 당황하였다. 샹카라차리야의 어머니는 특히 자신의 임종을 돌보아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매우 슬퍼하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자신이 꼭 돌보아 줄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지만 어머니는 만족해하지 않았다. 위대한 천재가 가지고 태어난 신성한 일은 이루어져야만 하였다. 드디어 샹카라차리야로 하여금 세상의 굴레로부터 자유롭게 하려는 어떤 일이 일어났다. 어느날 샹카라차리야와 어머니는 푸르나 강으로 목욕하러 갔다. 아들이 푸르나 강에서 목욕을 하고 있을 때 어머니는 마침 강둑에 있었다. 그때 악어가 나타나 소년의 다리를 물고 깊은 물속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죽음이 목전에 온 것을 알고, 샹카라차리야는 산야사(포기)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어머니에게 요청하였다. “오 어머니! 악어가 저를 물었습니다. 제가 산야신(포기, 고행승)으로 행복하게 죽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제가 산야신으로 죽는 기쁨을 가지게 해 주십시오. 제가 아파트 산야사(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 산야사를 받는 것)를 갖도록 제발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것은 매 힌두인들이 죽기 직전에 들어가는 것으로 여겨진다. 어머니는 즉시 그가 산야신을 받아들이는 것을 허락하였다. 샹카라차리야는 아파트 산야사를 즉시 받았다. 그때 악어는 소년의 다리를 놓고 강물 속으로 사라졌다. 샹카라차리야는 산야신이 되어 물에서 나왔다. 강으로부터 나온 그는 고행승으로 살 것을 결심하고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떠났다. 그때 그의 나이는 여덟 살이었다. 구루를 찾아서 칼라디를 떠난 뒤에 젊은 샨야신은 남인도를 방랑한 뒤 히말라야에 이르렀다. 그는 바드리나트에 있는 바드리카 아쉬람에서 자신의 스승이 될 스와미 고빈다파다 아차리야를 만나 그의 발에 엎드렸다. 고빈다파다는 위대한 가우다파다의 뛰어난 제자였다. 고빈다파다가 샹카라차리야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오 존경하는 구루시여! 저는 불도 아니고 공기도, 흙도, 물도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모든 이름들과 형상들 안에 숨어 있는 불멸의 아트만(참나)입니다.” 그는 마지막에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는 케랄라에 있는 브라민인 쉬바구루의 아들입니다. 저의 아버지께서는 제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스승님의 지도 아래 베다들과 샤스트라들을 배웠습니다. 강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동안에 악어가 저의 발을 물었을 때, 저는 아파트 산야사를 받았습니다. 이제 저를 정식으로 산야사에 입문시켜 주십시오.” 스와미 고빈다파다는 샹카라차리야의 진실한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였다. 그는 이 소년을 산야신으로 입문시키고 산야신의 옷을 주고는, 자신의 구루인 가우다파다 아차리야로부터 배운 아드바이타 베단타의 메시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하였다. 샹카라차리야는 스승의 명령에 따라 카시로 가서 거기에서 브라마 수트라, 우파니샤드들과 바가바드 기타에 대한 너무나 유명한 주석서들을 썼다. 그리고 그는 짧은 시간 안에 카시의 베단타 철학의 거두가 되었다. 그는 많은 논쟁에서 이겼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곧 인도의 영적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샹카라차리야는 또한 많은 박티의 시들을 지었다. 철학적 논쟁의 여정 샹카라차리야의 철학적 논쟁의 여정은 매우 독특한 것이었다. 카시의 아드바이타 베단타 철학의 무적의 챔피언이 된 뒤에, 샹카라차리야는 비전으로 비야사의 축복을 받았으며, 영적 정복을 위하여 이 거대한 나라를 여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가는 곳마다 그 당시 여러 철학 체계들의 저명한 지도자들과 논쟁을 하고 이기고는 아드바이타 베단타 철학을 확고하게 세웠다. 그 어느 누구도 그의 대화기술과 영적 통찰에 대항할 수 없었다. 그는 바타 바스카라를 논쟁으로 이겼으며, 그의 베단타 수트라 주석을 쓸모없게 만들었다. 다음에는 단디와 마유라를 만났으며 그들에게 그의 철학을 가르쳤다. 그 다음에는 칸다나 칸다 카디야의 저자인 하르샤를 비롯하여 아비나와굽타, 물랄리 미슈라, 우다야나차리야, 다르마굽타, 구마르릴라와 프라박카라를 만나 논쟁을 하여 그들을 패배시켰다. 그 다음에 그는 ‘갸나 칸다’ 진리를 세우기 위해서 마히슈마티로 나아갔다. 베다들의 ‘카르마 칸다’ 부분이 그 당시의 힌두 종교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렇게 된 것은 쿠마르릴라 바타와 만다나 미슈라와 같은 철학의 거장들과 종교적 권위자들에 크게 기인하고 있었다. 만다나 미슈라는 마히슈마티 궁전의 수석 판디트였다. 그는 의례를 완고하게 고집하고 있던 쿠마르릴라 바타의 위대한 제자였다. 만다나 미슈라는 카르마 미맘사 신앙 하에 자랐기에 당연히 산야신들을 증오하고 있었다. 샹카라차리야와 만디나 미슈라의 논쟁은 너무나 유명하다. 만다나 미슈라의 아내인 바라티는 박식하였기에 논쟁의 심판을 보게 되었다 만약 샹카라차리야가 논쟁에서 지면 샹카라차리야는 가정거주자가 되어 결혼을 해야 하며, 만다나 미슈라가 지면 산야신이 되어 아내로부터 산야신이 입는 옷을 받는다는 조건이었다. 논쟁은 며칠이나 계속되었다. 바라티는 앉아서 그들의 논쟁을 듣지는 않았다. 그녀는 화한을 두 사람의 목에 걸어 주면서 말하였다. “화환이 먼저 시들면 그 사람이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장소를 떠나 집안일을 하였다. 논쟁은 17일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만다나 미슈라의 화환이 먼저 시들었다. 만다나 미슈라는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이고 산야신이 되고는 샹카라차리야의 제자가 되었다. 그의 아내인 바라티는 샹카라차리야에게 카마 샤스트라에 대해 많은 질문들을 하였는데, 그가 얼마간의 시간을 가진 뒤에 그녀의 모든 질문들에 만족스러운 대답을 하자 그녀도 그의 제자가 되었다. 이 승리는 샹카라차리야의 영적 정복에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다. 슈리 샹카라차리야와 그의 제자들은 거짓 교리들을 논박하고 종교라는 이름 하에 그 당시에 유행하고 있었던 거짓 수행들을 무너뜨려 정화시키면서 온 인도를 여행하였다. 그리고 난 뒤에 그는 네 장소에 마트(무트)를 세웠는데, 남쪽에는 슈린게리, 북쪽에는 바드리나트, 서쪽에는 드와르카, 동쪽에는 자가나트푸리였다. 이들 장소는 아름다운 자연환경, 눈으로 뒤덮인 산, 숲과 강이나 해변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한 장소들은 하늘과 땅이 맞닿으며 인간의 사고를 숭고한 높이까지 가게 한다. 이 마트들을 세운 것은 인도의 물질적, 영적인 통합을 이루려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장례식 슈린게리에 머물고 있을 때 샹카라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말을 전해 듣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제자들을 떠나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 칼라디로 홀로 서둘러 내려갔다. 쉬바와 비슈누를 기리는 감미로운 찬가를 하면서 어머니의 영혼을 빛의 불멸의 영역인 하리의 거주처로 나아가게 하였다. 그는 집 뒤에 있는 강둑에 어머니의 시신을 손수 매장하였으며, 그 이래 그 장소는 성스러운 순례지가 되었다. 세상을 떠나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난 뒤 그는 슈린게리로 되돌아왔다. 거기로부터 그는 많은 추종자들과 더불어 동쪽 해안을 따라 여행을 하였다. 그는 가는 곳마다 아드바이타 베단타 철학을 확립하였다. 그리고 여러 전통의 사람들이 모이는 성스러운 곳들인 칸치의 카막쉬 사원, 바드리의 나라 나랴아나 사원, 네팔의 구히예스바라 사원 등을 방문하고는 그 장소에 슈리 차크라를 세우기도 하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네팔을 방문하는 동안에, 그는 슈리 다타트레야의 비전을 보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는 네팔로부터 히말라야에 있는 케다르나트로 갔으며, 케다르나트 사원에서 멀리 떠렁지지 않은 곳에서 32세의 나이로 이 세상의 삶을 마쳤다. 샹카라차리야는 인도 종교 체계의 이성적이며 과학적인 측면을 강화하였다. 그래서 사나타나 다르마가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거치면서 이 모든 도전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인도 철학에 대한 그의 공헌은 너무나 거대하고 영속적인 것이어서 후대의 모든 철학들은 그를 논박하거나 그의 생각을 밝히고자 한 것이었다. 그의 메시지는 진정한 구도자와 진정한 힌두인들의 가슴에 울려 퍼지고 있다. 샹카라차리야는 희망과 낙관의 메시지를 남겼다. 인간은 희망이 없는 최종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 안에 신성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자기의식의 진화를 통하여 발견된다. 평화, 풍부함과 즐거움의 왕국이 각자 안에 있다고 아드바이타 베단타는 말한다. 우리 모두는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 샹카라차리야는 베다들의 정수이며 희열과 불멸로 가는 길인 아드바이타 베단타 철학을 상세히 설명하기 때문에 인류에게 가장 위대한 은혜를 베푼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옮긴이 : 김병채 (Sri Krishnadass 1948. 2. 23 - )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유로움과 진리를 추구하였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1988년 12월 인도로 건너가 성자 요겐 드라지, 오쇼 라즈니쉬, 테레사 성녀, 달라이 라마, 나나가루 등 다수의 성자를 만났다. 그 후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의 힘에 이끌리게 되어 라마나스라맘에 머물렀으며, 1989년 4월 22일 갠지스 강가의 하리드와르에서 라마나 마하리쉬의 제자 슈리 푼자와의 삿상을 통하여 마침내 희열에 들었다. 그는 스승으로부터 슈리 크리슈나다스라는 이름을 받았으며 계속적인 만남을 통하여 무한한 사랑도 받았다. 지금은 국립 창원대학교와 대안대학원인 샨티구루쿨에서 요가 및 베단타를 가르치고 있으며, 영원한 삿구루이신 슈리 라마나와 슈리 푼자의 가르침을 펼치기 위하여 창원 북면에 슈리 크리슈나다스 아쉬람을 열고서 삿상을 주는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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