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리 라마나 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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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성자들 3>

슈리 라마나 릴라

지은이 : 슈리 크리슈나 빅슈
옮긴이 : 김병채
출판사 : 슈리 크리슈나 다스 아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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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뗄루구어로 쓰인 「슈리 라마나 릴라」는 슈리 라마나스라맘에서 슈리 바가반의 생전에 출판된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의 세 가지 전기 중의 하나이다. 다른 두 가지 전기는 「참나 깨달음」(영문)과 「슈리 라마나 비자얌」(따밀어)이다. 뗄루구어 책은 슈리 크리슈나 빅슈(1901-1981)에 의해 저술되었는데, 그의 본명은 오루간띠 벤까따 크리슈나야였다.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정부 관리로 일했던 그는 1930년대 초부터 슈리 라마나스라맘을 자주 방문했다. 「슈리 라마나 릴라」는 1936년에 처음 발간되었으며, 이후 판을 거듭하면서 개정되었다. 이 책은 슈리 바가반에 대해 대단히 가치 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으며, 특히 그분의 저작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 책을 더 많은 독자들에게 전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번역본이 나오게 되었다. 라마나 문학의 방대한 영문 서적 목록에 이 책이 추가되어 기쁘다. - 슈리 라마나스라맘 대표 V.S. 라마난

 

 

차례

 

발행인의 말 영역자의 말 1. 도래 2. 가족 3. 유년 시절 4. 여명 5. 어린 시절의 애착 6. 영적 탄생 7. 고통 8. 명령 9. 작별 인사 10. 위대한 여행 11. 목적지 12. 입문 13. 따빠스의 장소 14. 요가의 왕국 15. 요가 싯디 16. 승리의 요가 17. 준비 18. 비할 수 없는 산 19. 가르침의 시작 20. 쉬바쁘라까삼 삘라이 21. 에참말 22. 가나빠띠 무니 23. 라마스와미 아이어 24. 사두들의 괴롭힘 25. 세샤드리 스와미 26. 드라비다 시인 27. 슈리 라마나 기따 28. 산 위의 생활 29. 기리쁘라닥쉬나 30. 나따나난다 스와미 31. 알라감마 32. 어머니의 니르바나 33. 슈리 라마나스라맘의 시작 34. 바가반을 따르는 사람들 35. 출판물 36. 세상의 빛 37. 현존 38. 가르침의 방법 39. 일상생활 40. 현현을 거두어들임 41. 사명을 마침 42. 황혼 43. 태양이 지다 44. 어디로 가십니까? 45. 그 뒤의 일 46. 몇 가지 일화 47. 가벼운 순간들 48. 기적들 49. 아바따르의 본성 봉헌 부록: 띠루출리 순다라 만디람

 

 

책 속으로

 

42. 황혼 어둠이 대지를 감싸기 훨씬 전에 태양빛이 잦아들고 태양은 세상의 슬픔 쪽으로 진다. 비루팍샤 시절, 스깐다스라맘 시절, 그리고 라마나스라맘 초기 시절 바가반의 몸은 밝게 빛났다. 그 뒤 디빰 축제일, 마하뿌자, 그리고 바가반의 자얀띠 날을 제외하고 그 빛은 사라졌다. 그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었다. 죽음이 가까워 오고 있다는 징표라는 말도 있었고, 바가반의 몸이 노쇠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었다. 점성가들은 죽음이 가까워 오고 있다고 말했다. 나디 그란타에 따르면, 라마나 릴라는 바가반이 80세가 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이런 방면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은 행성들이 냐니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를 질문했다. 몇몇 사람들은 “라마의 아누그라하(은총)가 있다면 그라하(행성)들이 뭐가 문제인가?”라고 한 성자이자 작가인 띠야가라야의 말을 인용했다. 그 외의 사람들은 “바가반께서 육체에 전적으로 무관심하기 때문에 행성들이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바가반은 수차례에 걸쳐 “이것(몸)은 여러분의 열망에 따라 생겨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헌신자들의 열망을 가리켰다. 그는 또한 “그것은 여러분에게 필요하지 않을 때 가게 될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말은 바가반의 생명이 전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열망에 달려 있다는 의미였다. 만일 그렇다면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즉 “몸의 일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자는 누구인가” 그 물음에는 답이 있을 수 없다. 젊은 시절 몸을 보살피지 않은 결과가 1945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에참말의 죽음(1945년)과 더불어 그 결과들은 보다 명백해졌다. 그 전부터도 바가반은 천식을 앓았고 겨울에는 관절 부위에 통증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종종 단 것과 버터밀크를 삼갔다. 누구도 영원히 살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만일 몸이 태어나는 이유가 있다면, 몸이 죽는 이유도 있어야 할 것이다. 바가반의 경우 아바따르의 목적이 완전히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적절할 것이다. 가나빠띠 무니가 《라마나 기따》에서 말했듯이, 그 목적은 참나와 자유 안에 거주할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입증해 보이는 것이었다. 바가반은 이것을 반세기 이상 동안 입증해 주었다. 바가반의 발아래에서 봉사하기 위해 멀리서 구도자들이 찾아왔고, 그의 메시지는 먼 나라까지 퍼져 나갔다. 그의 은총은 그들이 공덕에 따라 헌신자들, 요기들, 냐니들, 제자들에 의해 경험되었다. “여기 오는 사람은 누구도 빈손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바가반은 헌신자들의 까르마의 결과를 책임지고 있으며, 그것은 그가 많은 육체적 질병으로 고통 받은 이유이다.” 누가 이 말에 반박할 수 있겠는가? 바가반이 헌신자들의 고통을 책임진 것은 사실이다. 크리슈나무르티라는 이름의 헌신자가 집게손가락이 아파 고통 받고 있었지만 아픔을 감추고 바가반이 자리한 가운데 조용히 앉아 있었다. 갑자기 바가반이 자신의 집게손가락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그 헌신자의 고통은 사라졌다. 1947년 이후 바가반의 건강이 눈에 띄게 쇠약해지자 헌신자들은 근심을 하였다. 류마티즘으로 인한 그의 고통은 허리와 등으로 확대되었다. 쇠약해지는 몸을 위해서는 보다 영양가 있는 음식을 섭취해야 했을지 모르지만, 바가반은 자신에게 어떠한 특별한 대접도 허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말하곤 했다. “몸 자체가 병입니다. 우리는 이 병(몸)이 일으키는 병의 영향을 줄이는 방법을 찾을 것이 아니라 이 병의 근원을 탐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바가반은 약을 가져오는 사람들을 놀리곤 하였다. 방갈로르 출신의 아유르베다 의사인 라마찬드라 라오가 한번은 아유르베다 약을 조제하는 데 필요한 약품 목록을 가지고 와서 바가반에게 보여 주었다. 바가반은 그 목록을 한 번 훑어보고는 약품 하나하나가 좋은 약품이라고 칭찬하였다. 그러자 라마찬드라 라오는 바가반에게 “약을 조제하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바가반은 “약이라고요? 누가 먹을 약 말입니까?” 하고 되물었다. 라마찬드라가 “바가반께서 드실 약입니다.”라고 대답하자, 바가반은 “왜 내가 약을 먹어야 합니까? 나는 괜찮습니다. 당신이 나보다 더 약하게 보입니다. 당신이 약을 먹는 게 낫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헌신자도 바가반이 강장제를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말에 바가반은 “내가 강장제를 먹을 만큼 부자입니까? 종이 울리면 식당으로 가서 내 몫의 음식을 먹는 것이 고작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어느 헌신자가 바가반에게 “슈리 오로빈도는 우유와 과일과 아몬드를 먹습니다.”(바가반도 그 정도는 먹어야 한다고 암시하며)라고 말했다. 바가반의 대답은 “당연히 그는 그 정도는 먹을 수 있습니다. 그는 꽤 부자입니다. 그런데 나는 뭘 가졌습니까?”였다. 바가반은 항상 헌신자가 아프면 가장 먼저 달려가 그를 돌보았다. 그는 그의 은총으로 헌신자들의 병을 치료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를 치료하여 수많은 헌신자들이 계속해서 그의 은총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은 헌신자들의 불운이었다. 아쉬람 관리자들은 바가반에게 그들 자신을 위해 스스로를 치료해 달라고 요청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그들은 의사를 보내 약을 처방하고 보통 사람의 몸에게 하듯이 바가반을 수술했다. 그들이 진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때가 너무 늦었다. 이전에 바가반은 여러 번 황달과 같은 병을 스스로 치료하였다. 그때 의사의 약은 효과가 없었다. 딸꾹질이 멈추지 않고 계속될 때도 그랬다. 바가반이 다리와 등에 습진을 앓은 적도 있었다. 의사인 멜꼬떼는 두 달 동안 여러 가지 약을 처방했지만 모두 실패였다. 마침내 눈에 눈물이 어린 채 목멘 소리로 바가반에게 스스로를 치료해 달라고 간청했다. 이틀도 안 되어 바가반은 스스로를 치료하였다. 바가반은 생사의 윤회라는 질병을 고치는 의사가 아니던가? 바가반의 죽음이 가까워진 상황에서 바가반께서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은 어쩌면 바가반께 복종하는 것이라는 것을 헌신자들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1949년 2월, 작은 종기가 바가반의 왼쪽 팔뚝에 나타났는데 바가반은 이를 무시했다. 그러나 의사들은 그냥 넘기지 않았다. 의사들은 수술을 하여 곧바로 그 종기를 제거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49년 2월 9일 저녁, 의사 샹까라 라오는 역시 의사인 슈리니바사 라오의 도움을 받아 바가반의 욕실에서 그 종기를 제거했다. 수술 전 바가반은 “나뭇잎 몇 장으로 종기를 감싸고 묶어 두면 종기가 없어지지 않을까요?” 하고 물었다. 그러나 의사들은 “사르바디까리도 우리의 제안에 동의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뒤로 바가반은 침묵을 지켰다. 붕대를 감은 지 일주일 뒤 상처는 치료되었고 붕대는 벗겨 내었다. 이 종기는 다시 생겼고, 한 달도 되지 않아 커져서 사람들을 걱정하게 했다. 그러자 마드라스에 있는 유명한 의사인 라가바차리 박사를 불렀다. 이 의사는 국부 마취를 한 후 1949년 3월 27일에 종양 수술을 했다. 이 종기는 신경 위에 생겼기 때문에 환부를 깊게 잘라 내야 했다. 생체 검사를 하고 조사를 의뢰했다. 환부는 낫지 않고 오히려 더 퍼졌다. 생체 검사의 결과가 4월 중순에 나왔는데, 육종으로 진단되었다. 그래서 라듐 치료를 했지만, 종기는 치료되지 않고 오히려 피가 나기 시작했다. 수혈이 4월 30일에 실시되었다. 마침내 라가바차리 박사는 팔뚝 절단 수술을 제안했지만, 바가반은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분명하게 수술을 거절하였다. 후에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종기가 머리에 나면 그들은 아마 머리를 자르라고 할 것입니다.” 바가반의 팔뚝을 자르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헌신자들은 자신의 몸은 자신이 알아서 한다는 바가반의 말에 일말의 희망을 가졌다. 1949년 5월 8일, 유명한 아유르베다 의사인 락슈미빠티 박사는 특정한 나뭇잎으로 상처 부위를 묶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방갈로르 의사 라마찬드라 라오 박사도 비슷한 제안을 했다. 이 말을 듣고 한 헌신자는 문제를 그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에 확신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바가반은 “그는 의사입니다. 그가 잘 아니까 그렇게 말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바가반에게 그의 상깔빠로 스스로 치료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묻자, 바가반은 “내가 그 병을 초대했다면, 사라지라고 명령할 수도 있겠지요.”라고 대답하였다. 락슈미빠티 박사가 제안했기 때문이었는지, 약용 나뭇잎에 대해 잘 아는 민간요법 의사 발루바이 따따가 1949년 7월 5일에 초청되었다. 이 사람은 바가반이 아루나찰라 산에 머무는 동안쇄골을 다쳤을 때 치료해 준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그와 같은 종기는 수술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하면서 어떤 특별한 붕대를 감았다. 이 붕대는 출혈을 줄여 주었다. 그러나 이 의사는 종양의 독’을 제거하겠다는 이유로 상처 부위에 매운 고춧가루를 발랐다. 수술 부위가 아닌 경우에도 매운 고춧가루를 바르면 누구든지 고통을 참을 수 없는데, 수술 부위에 고춧가루를 바른 바가반의 고통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체온이 급격히 올라갔다. 그 때문에 이 민간요법 의사의 시도는 중지되었다. 1949년 7월 25일, 또 한 명의 유명한 의사 구루스와미 무달리아르 박사가 바가반을 찾아와서 수술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주사약 복용을 제안하고 다시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떠났다. 한편 여러 명의 베다 학자들이 바가반의 회복을 위해 특별히 뿌자와 수리야 나마스까라를 시작했다. 슈리 나감마와 같은 일부 헌신자들도 그들과 합류했다. 바가반은 그들을 막지 않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게 내버려두십시오. 나쁠 게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다른 때에는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수리야의 아뜨마는 여기에도 있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8월에는 페니실린 주사를 놓기 시작했다. 바가반에게 휴식이 필요해짐에 따라 바가반의 달샨 시간도 제한되었다. 11월에는 구루스와미 무달리아르가 다시 방문하여 의사들과 상의한 후 또 한 차례의 수술이 필요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바가반은 다음 날 아쉬람 의료 시설로 옮겨졌다. 혈액을 수혈하고 마취를 한 후 출혈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기 칼로 종기를 잘라 냈다. 걱정하는 군중들이 아쉬람 의료 시설 주위로 몰려들었다. 질서 유지를 위해 자원 봉사자들과 경찰이 배치되었다. 스와미 니란자나난다의 요청으로 군중들은 물러나기 시작했다. 저녁 6시 이후 바가반은 병원의 베란다에 앉아서 헌신자들에게 달샨을 주었다. 다음 날 바가반은 홀까지 혼자 걸어가서 달샨을 주었다. 의사들은 다시 희망을 가졌다. 라듐 치료가 재개되고 상처는 낫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2월이 되자, 이전에 종기가 생겼던 부위의 조금 위쪽에 또 다른 종기가 생겨서 상황이 더 악화되었다. 의사들은 12월 19일에 이 종기도 수술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 뒤 의사들은 포기했다. 헌신자들의 불안은 고조되었다. 그들은 바가반이 며칠이나 더 살 수 있을지 서로 묻기 시작했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 슈리 크리슈나 빅슈(1901-1981) 옮긴이 : 김병채 (Sri Krishna dass 1948. 2. 23 - )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유로움과 진리를 추구하였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1988년 12월 인도로 건너가 성자 요겐 드라지, 오쇼 라즈니쉬, 테레사 성녀, 달라이 라마, 나나가루 등 다수의 성자를 만났다. 그 후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의 힘에 이끌리게 되어 라마나스라맘에 머물렀으며, 1989년 4월 22일 갠지스 강가의 하리드와르에서 라마나 마하리쉬의 제자 슈리 푼자와의 삿상을 통하여 마침내 희열에 들었다. 그는 스승으로부터 슈리 크리슈나 다스라는 이름을 받았으며 계속적인 만남을 통하여 무한한 사랑도 받았다. 지금은 국립 창원대학교와 대안대학원인 샨티구루쿨에서 요가 및 베단타를 가르치고 있으며, 영원한 삿구루이신 슈리 라마나와 슈리 푼자의 가르침을 펼치기 위하여 창원 북면에 슈리 크리슈나 다스 아쉬람을 열고서 삿상을 주는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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